Saturday, December 25, 2010
2010-2011
+2010년은 12월 31일일까지 꽉꽉 채워서 고민을 던져주려나 보다. 이번 해는 끝까지 만만치 않은 해다. 정말.
++그래도 이런 고민을, 그리고 감정을 얻는게 소중하다는 마음가짐엔 변함은 없다. 나중에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어도 그 기분을 함께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소중한거다.
+++2010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올해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한국 내 친구들도 그렇고, 싱가포르에서 기억도 그렇고, 9월에 온 코이와 함께한 추억도 그렇고. 그래도 사는게 참 좋은 일이다. 재밌는게 많은 세상이다. 라고 느끼게해준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2010년을 돌아보면 생각날 시간들에 이 사람들이 가득할 것 같다. 그나저나 2011년엔 이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무엇을 배우게 될까. 또 어떤 힘을 얻을까. 나눌까.
++++2010년, 분명 백호의 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고. 기분이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호랑이 해였던 2010년은 호랑이 띠인 나에게 세번째 찾아온 성장 사이클이었다.
1986년. 1998년. 2010년.
1986년엔 세상으로 나옴을, 1998년에는 아동기의 끝과 청년기의 시작을. 2010년엔 청년기의 끝과 어른으로의 걸음을. 그 경계였나보다.
1986년 세상에 나오는 고통은 엄마가 대신해 줬고. 1998년은 유년기 나름의 해맑음이 아픔의 자리를 대신했고. 하지만 2010년엔 온전히 '학생'이라고도, '어른'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무방비한 위치에서 누구도 내 고통을 대신해 주지 못했다.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고통이든 기쁨이든. '인간은 본래 이런거다. 어른이 되는 건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호되게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평생 생각지도 않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그리고 몇몇 사건을 통해 믿어 왔던 가치들이 깨질 때마다.어린애 걸음마 하나를 뗄때처럼 어려웠다. 그리고 생애 처음,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에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믿기지 않았던 순간은 영원히 믿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문득 찾아 올 때. 요즘 내 고민을 털어 놓으면 선배는 어떤 얘기를 해줬을까라는 단순한 상상부터. 그리고 우리를 만났을 때 당신의 꿈을 털어 놓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모습이. 유명하다는 와플을 손에 들고, 샌달을 함께 사러 다녔던 그 홍대거리가. 동아리 MT때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며 함께 술을 기울이던 그 날이. 시험 기간에 아름아름 전공책을 챙겨주던 그 때가.
정작 선배가 영원할 줄 알았던 그 때에는 그리 살갑게 다가가지 못한 내가, 지금에서야 잊고 지내던 것들을 새삼스레 일부러 꺼내 추억하는게 미안하기만 했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는 어느새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으로 채워졌고,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그리움이 그렇게 아픈 것인지 몰랐다. 그날엔 그저 사람들이 떠나간 사람을 잊고 살아간다는게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남겨진 사람들은 일상을 찾아가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그리움은 그날의 슬픔과는 비례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추억한다'라는 횟수가 그 추억의 깊이와는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2010년이 세번째 성장 사이클이었던 것은 다만 이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도 쓰기에 부끄러운, 가끔은 스스로 견딜 수 없이 부정하고 싶은 모습과 마주해야 했다. 부연 설명을 하기에도 페이지가 모자를 만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들. 이건 2010년에 끝이 난게 아니라 2010년을 첫 페이지로 챕터가 시작된 것처럼 이제 막 시작된 고민들 같다.
하고 싶은 말도, 생각도 많은, 2010년을 뒤로하고
2011년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엔 어른이 되는 2년차인가 싶다. 내년엔 덜 어른이 되더라도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Friday, December 3, 2010
12월
12월이 한달이 채 안남았다.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마음대로 되는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고.
이번 한해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시기이도하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스스로 뚫어져라 바라봤다.
살면서 고민해보지도 않은 토픽들이 내 머리를 맴돌기도하고,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도 있음을 결론짓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알아채지 못한 정말 싫은 나의 모습도 발견했다.
그 모습이 싫다고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절망했다.
생각이 많아져서 견딜 수 없는 새벽엔 무작정 힘이 될만한 책을 찾아 읽었다.
위로를 찾고 잠이 들다가도 아침이면 또다시 어제와 같은 고민의 반복이었다.
하루하루 달라지지 않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볼 시간이 내 생애에 몇번이나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시간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감정과 고민을 얻어간다는게 소중하다.
청춘이니까 부지런히 달릴 수 있지만 낭비도 할 수 있는거다.
지금이니까 철없이 기뻐할 수도 끝없이 후회 할 수 있다.
이러한 내 마음가짐이 유일한 위로였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자.
언제부터인가 꾸준하지는 않지만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엔 이런 말들이 빠지지 않았다.
결국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 가득해서 감사하다고.
새해 계획은 세우지 못 하겠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년말고 내일부터라도 하루하루.
Tuesday, November 23, 2010
Monday, November 15, 2010
정직한 절망을 위해
kimmiwha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8:00 AM Nov 4th via twtkr (개그우먼 김미화 트위터에서)
Saturday, November 13, 2010
해석
고등학교 때는 교과서가 해석해준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대로, 시험을 위한 시 배우기에 담담했다.
"이 시의 주제는.. 시인은 짝사랑을 담담하게 보내는....블라블라, 이 시의 주제는.. 독립에 대한 갈망을 사랑에 빗대어.....블라블라, 시인의 마음을 함축한 단어로 이 시의 핵심주제......블라블라"
어쨌든 시험은 봐야하는거니까 해석해주는대로 이해했다.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시 해석은 그래도 충실하게 외워댔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이따금 마음 속으로 나름의 조용한 반항을 했다.
'아니, 이 시인은 짝사랑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다음 날 화를 누르면서 쿨한척 시 쓴것 아니야? .....이 시만큼은 독립에 대한 갈망을 쓴게 아니라, 진짜 사랑에 대한 갈망만 떠올렸을 수 있잖아......주제 함축? 그냥 아무 의미없이 쓴 단어 아냐???... 시인이 살아나서 설명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는거아냐???"
'시대 상황과 시인의 삶 등등으로 특정 시를 해석하는 것은 후대 사람의 해석에 불과하다! 시인빼고 아무도 모른다!' 라고 문학 시간에 외치고 싶었지만, ㅎㅎ 현실은 배운대로 착하게 시험을 치뤘다.ㅎㅎ맞힌 문제에 환호하며 ㅎㅎ
아무튼 가끔 창작자도 놀랄 정도로 해석이 과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자신이 만들어 낸 것에 의도치 않게도 수많은 역사적, 예술적, 시대적 부연 설명들이 붙는다면....? 내가 창작자라면 그 해석들에 반박하기도 귀찮아서, 해석도 또다른 창작이겠거니 넘어갈 것 같다. (그림이든, 만화든, 영화든, 음악이든, 시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이 시를 읽으며 느낀 나름의 해석은 창작활동(?)ㅎㅎ (거창하네.)
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
짝사랑에 대한 간절함을 담담하게 그린 시라고 배워왔다. 근데 나는 오늘 이 시가 전혀 사랑 얘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대신 '꿈'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대'와 '사랑'을 '꿈'으로 치환하여 읽어 보니 제법 내가 느낀 바와 어색하지 않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꿈으로 읽었을 때 시가 절실히 와닿았다.
(아, 원래 시는 이런건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빚어내는 것이 위대한 작품인가? 그게 예술인가? 윽, 어렵다.ㅎㅎ+윽, 쓰고보니 허세같음 ㅎㅎ)
또 밤이 지났다. 시 얘긴 그만하고 어서 돌아가 할 일 해야지...ㅠㅠ
- 1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2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Tuesday, November 9, 2010
선생님2
어제 친분이 있던 교수님께 약 1년 만에 메일을 보냈다. 밀린 신문을 읽다가 금새 지루해져 갑자기 생각난 선생님께 메일을 썼다. (나는 존경하는 은사님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고 싶다.) 때마다 찾아뵌다고 하고 못 지킨 게 1년이 넘어 간다;
타전공 과목 선생님이었는데, 무작정 듣고 싶었던 과목에 쭐래쭐래 찾아 들어간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수업이었다. 그 학문과 반대 날개를 달고 있는 경제학에서 찾아 온 학생이어서 그런지 말씀은 안하셨지만 신경을 많이 써주신 것 같다. 쉬는 시간에 자판기 300원짜리 커피를 쏘는 넉넉함이라든지, 수업 끝나고 수업 내용에서 모르는 것은 없었는지, 요즘 읽는 책은 어떤 책인지 한 번 더 물어봐 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3~4년이 흐른 지금,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선생님 강의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 후 다음 학기에 선생님의 다른 과목을 신청했었는데, 친분이 쌓여 편해진 탓에 지각도 엄청 해댔다;(아 부끄럽고 죄송하다;) 아무튼 요지는 이게 아니고, 그 때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생각에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계기가 그때였다고 해야하나.
나는 영문학을 복수 전공으로 기웃거리다가 한 과목 듣고 나서, 차라리 내가 관심 있는 과목을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들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 내렸다. (그 결정 때문에 경제학을 단일전공 하는 마냥 내키지 않는 상황에 닥치긴 했지만.;;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경제학 48학점을 채워가면서 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수업시간에 익힌 경제학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경제학에서도 여러 관점이 있지만, 그 때 나는 교수님들의 특정 목소리만 모아들었다;) 교수님들의 논리는 학생 입장에서는 참으로 당연하게 느껴져서, 자칫하면 그것만이 세상의 진리이자 정답인냥 생각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실감)
그 때 한창 한-미FTA 관련해서 논란이 많이 일었던 시점이었는데 좌우 양 날개에 서 있는 전공과목과 타전공을 한꺼번에 들으면서 나와 내 친구는 혼란 상태에 빠졌다. 3시간 동안 한-미FTA의 정당성에 관한 전공 교수님 의견에 한창 수긍하다가, 15분의 텀을 두고 연이어 있는 타전공 수업에서는 FTA 체결의 부당함을 그리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해야했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학문에 관심을 끄고 자기 전공만 판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다. 생각의 틀에 갇히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말이다. 내가 만약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철저히 짝눈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세상을 짝눈으로 바라보곤 하지만, 그래도 극단에 서있는 두 학문을 접하면서 '적어도 다른 한편엔 틀린 얘기가 아니라 다른 얘기가 있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얻었다.
선생님의 수업이 생각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수업 시간 외에 나눴던 얘기였다. 그 때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사소한 농담이라도 던지며 교수와 학생의 벽을 허물려고 하셨다. 일 년에 두 번 장학금 신청 때문에 잠깐 얼굴만 보고 나왔던 담당 교수님보다 친근했다. (그나마 얼굴보고 했던 장학금 신청은 이제 담당 교수님 승인 없이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대학에서 내 꿈을 물어봐주셨던 유일한 교수님이기도하다. 학생의 꿈에 대해 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당신이 겪어왔던 경험으로 공감을 대신해 주셨다. 오랜 시간 알아온 분이지만 말을 쉽게 놓지 않고 존칭을 붙이며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
오늘 선생님께 답장이 왔기에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다. 어제 메일 내용에 요즘 근황을 늘어놓으면서 신념을 잃어간다, 그동안 너무 오만했다. 등등의 말을 쏟아냈는데, 선생님의 답장을 받고 가슴이 훅 찔렸다. "지금 필요한건 신념이 아니라 자신감 같은데요? 나도 그 시기를 겪었고 그 시기에 있는 학생들을 보면, 스스로 오만했다고 반성할 때가 자신감이 부족할 때더군요. 내가 아는 뫄뫄씨는 열정도 능력도 가득한 사람입니다...........취직해서 거하게 살 생각하지 말고, 취직 전에도 작은 밥이나 먹으면서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의 내용.
여전히 선생님은 정곡 찌르기에 달인이시다. 메일을 보고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감사했다. 선생님이 생각하신 만큼 열정도 능력도 그리 가득하지 않은데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찔리기도 엄청 찔렸다. 예전에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와 선생님, 나 이렇게 짬뽕 한 그릇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은 짬뽕을 드시며 '요즘 리포트랑 시험지 보니까 뫄뫄씨 글 많이 늘었던데요?' 라고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 때 한창 스터디를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진 시기였는데, 지금처럼 엄청 찔렸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구나, 할 수 있구나'라는 단순한 마음도 생각났다. 다시 시작해보자고.
언젠가 더 공부할 생각은 없냐고 대학원 진학을 권하셨던 적이 있었다. 요즘 뜻 하는 대로 삶이 굴러가지 않아 속상할 때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선생님께 말하면 분명 좋은 소린 듣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리를 휘젓는다. 지금 내 고민이 많다고 해서 다른 자리의 고민이 적어 보일 뿐인 거라고. 내가 그 길을 택했다면 지금만큼의 또 다른 고민에 직면했을 거라고. 좀 더 생각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질 때 해도 좋을 후회라 생각한다. 그 때가 되면 도피성 심리가 아니라, 정말 내 진심을 찾을 수 있겠지.
아무튼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정신 차리고 살아가고 싶다. 좀 더 간결하고 재미있게. 그러다보면 언젠가 선생님의 칭찬이 부끄럽지 않게 들리겠지.
Saturday, November 6, 2010
이상형, 이상향
-나의 변치않는 이상형 이적과 유희열,
초등학교 때부터 이적이랑 결혼할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용돈 모아서 중고등학교때 이적 콘서트를 가는 날을 손꼽았었는데
어느새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이적을 처음 좋아했던 그 나이를 지나 어느새 그때 이적의 나이에 내가 있다니.
-어쨌든 이적은 여전히 이상형이기도, 동시에 닮아가고 싶은 이상향이기도하다.
글도 말도 생각도 여러모로 재주도 많고 매력도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사람 노래하는걸 보면 순간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자신의 일을 가장 즐기고 있다고 느낀 순간 성공의 반열에 올라가있었다고 말한 한 유명인의 말처럼, 모든 일을 즐긴다는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하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하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고 연인이라면 그건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닮고 싶은 사람을 알아가고 만나가는게 그 자체로 행운이기도하고.
(유희열은 정말 웃기다...내가 딱 좋아하는 유머..이 유머스타일을 따를 자가 누가 있을까.ㅎㅎ)
(김광석 <기다려줘>, 가사..예술이다..)
(뮤직비디오의 앞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달리는 부분)
Tuesday, November 2, 2010
분위기
오랜만에 다시 모인 사람들과 카페에서 글을 썼다.다시오고 싶은 카페는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결정나곤 하는데, 그곳의 노래는 가만히 있어도 거슬릴 만큼 최악의 선곡을 들려줬다;; 거슬려도 글은 써야겠다 싶어 억지로 집중하고 있는데! 귀를 사로 잡는 노래 하나가 나오더라.! 집중하고 있던 스터디원한테 뜬금없이 "이거 누구 노래인지 알아?"라고 물었고, 서로 피처링은 김종완이 맞는데 여자 목소리에 긴가민가. 대충 에즈원이라 결론짓고 호기심을 마무리 지었지만, 집에 오자마자 검색했다. 오! 보아 노래였다. 의외였다. 이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었다니.(평소 보아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지도 몰랐었다;;) 노래에서 김종완표 노래입니다 라고 느낌이 풍겨나오는데 악 너무 좋다..! 김종완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보아는 특유의 여전사 이미지 말고;; 이런 노래로 나와보는게 어떤가 싶을정도로 묻히기엔 아까운 노래. (보아양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보아 노래를 이렇게 반복해서 들은 적은 처음이다;;)
쏘굿. 우연히 좋은 노래 알게되면 기분이 굿굿.
Saturday, October 23, 2010
푸하하
(전혀 야하거나 이상한 동영상 아닙니다.)
what happens during ejaculation?
유쾌한 동영상ㅋㅋ재치있는 상상력!
무엇보다 우디앨런이 너무나 귀엽게 나온다.ㅎㅎ
특히 하모니카 부는 장면이 왜이리 웃긴지ㅋㅋㅋㅋㅋ
양심이 신부님으로 나오고ㅋㅋㅋㅋ
우디앨런과 그의 영화에 급관심이 생겼다. !!!!
그나저나 웃기다 ㅋㅋ
Monday, October 11, 2010
시큰
사실 잘 울지 않는 편이다. 영화나 다큐를 봐도 눈물을 그렁거릴 정도였지 콸콸 쏟는 타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니였다'.
마음이 약해졌는지, 남들 얘기처럼 나이가 들면서 눈물만 늘어가는지 몰라도 내가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아니였구나 싶다.
어제와 엊그제, 친한 친구 몇몇을 만났다. 일찌감치 일자리를 잡은 친구도 있고, 아직 학생인 친구도 있고. 여전히 변함없이 따뜻한 내 친구들이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졸업하기 전에 나눴던 공통적인 고민보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 나처럼 아직 사회에 나가기 전에 견뎌야 할 경쟁에 지친 사람도 있었고, 사회에 나간 친구는 직장에서 맞서야할 경쟁에 버거워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취직하면서부터 내 고민을 털어 놓기 미안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갓 신입사원이 된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더 치열한 삶을 살고있고, 그들 역시 너무나 힘들 것을 알기 떄문이었다.
술을 한 두잔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서로 어떤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내 차례가 돌아올 동안 평소 같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 그래' 등등의 호응을 하며 잘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의 얘기가 담담하게만 들려왔다. 별다를 것 없이 그저 내 앞에 있는 라멘 국물을 푹푹 떠먹으면서 얘기를 들어줬다.
그러던 찰나, 내 차례가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찡찡거리다가 결국엔 괜찮아질거야 라고 푸하하 웃으면서 넘기곤 했던 내 이야기가 엊그제만큼은 왠일인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입을 뗀 '음, 요즘 나는..'으로 시작한 얘기에, 어느새 모임의 초점은 "뫄뫄 기 살리기 프로젝트"로 변해있었다. (일년동안 들을 덕담은 다 들은 것 같다) 그렇게 애써주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갑자기 날 위한 위로 모임이 되어 버린 탓에, 다들 힘든데 유난 떠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고, 한편으로 나보다 날 더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힘을 받기보다 힘을 주는게 더 좋았던 예전으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임이 마무리가 되어 갈 때즈음 친구들에게 "얘들아,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하려 했다. (적어도 머리에서는) 하지만 입을 떼는 순간, '미안..'이라는 말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바보처럼 눈물을 줄줄 흘렸다.(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편안한 사람들 앞이라 마음이 방심을 한 것 같았다. 평소 같지 않게 쉬이 흐른 눈물이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쓱한 마음에 이내 씨익하고 웃으려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더라 또. 웃으며 울기(?)의 요상한 표정만 실컷 보여주고 왔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Sunday, October 10, 2010
For the troubled may you find peace
For the despairing may you find hope
For the lonely may you find love
For the skeptical may you find faith
Frances C. Arrillaga 194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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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데 너무 어렵게 살고 있다. 다들 너무 어렵게만 산다.
간단하기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간편한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와는 분명 다른 말이다.
(이어서 써놓은 글이 쓰는 도중 오류 때문에 다 지워졌다....나중에 다시 업데이트 예정)
Thursday, October 7, 2010
교육인가, 야만인가
글이 쓰여진 날짜를 보지 않고 읽었다. 요즘 일어난 일이구나하고 읽어내려갔는데 작성일은 2002년이었다. 2002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했던 시사 토론 동아리에서 일년에 한번 토론집을 냈었는데, 그때 글감으로 선택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당시 동아리원끼리 찬반을 나눠 이슈마다 자신의 글을 올렸는데, 그때 고교평준화에 한창 열을 올렸던 나는 찬성측에서 할말도 쓸말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글인지 먼지 쌓인 토론집을 펴봐야 생각나겠지만, 그 때 글을 쓸 때 했던 생각 하나는 정확히 기억난다. 바로 우리 교육이 지금보다는 천천히라도 조금씩이나마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후 대략 1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칼럼을 읽고 한 치의 시대적 거리감 없이 요즘 글이라 느꼈던 것이 그러한 증거이기도하다. 2002년에 고민했던 이슈는 지금 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달라지지 않았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처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단순 되풀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안들이 몇 년전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이기는커녕 뒷걸음질 치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모습이다. 그렇게 열을 올리며 사회적 사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던 때는 지금보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였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고등학교 때는 적어도 행동하는 비판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이 그때보다 더 그럴 듯한 '갖춰진' 논리를 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어디까지나 '갖춰져' 있는 보기 좋은 논리일 뿐이다. 한 때는 큰 소리를 못내더라도 우리사회에 '적어도'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한다는 사명감을 운운했지만, 지금은 사명감은 잊은 채 현실에 쫓겨 의무감으로 신문을 보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그리고 숨가쁘게 변해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만큼은 빠르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천천히 둘러봐야할 후미진 곳에 시선이 닿기 위해선 좀 더 속도를 늦춰야한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 갈 수록 시선이 닿아야할 곳은 많아지고 소외는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빠른 물살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요즘 나부터도 현실이라는 물결에 쓸려 정신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만아니라, 시대가 야만으로 변화하고 있는 기분이라고하면 과언일까.
----------------------------------------------------------
교육인가, 야만인가/ 홍세화
최근에 우리 교육의 실상을 알게 해주는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서울대에서 ‘고교평준화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된다’는 연구서가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시교육청이 경찰력 투입을 요청하여 농성중이던 전교조 조합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케 한 사건이다. 두 사건은 그릇된 권위와 공권력으로 이미 처절하게 왜곡된 교육을 더욱 파행으로 몰아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서울대 연구서는 ‘고교평준화가 종교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그리고 사립학교 선택과 운영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자유를 주장할 만큼 한국사회의 인권수준이 대단히 높은가 보다. 또 국민의 3분의 2가 가톨릭임에도 ‘교육-종교의 분리’라는 공화주의 원칙에 따라 90% 이상의 고교생을 수용하는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배제하고,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평준화되어 있으며 모두 국립인 프랑스는 인권 미개국임에 틀림없다. 진정으로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가난한 사회구성원들에게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고 있는 사회현실에 먼저 눈을 돌려라. 무료 공교육제도를 강화하면 신자유주의의 적자인 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가 바라는 ‘인적자원’을 늘려 국가경쟁력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할 자유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자들, 즉 가진 자들의 국내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 계급·계층의 단순재생산구조를 더욱 굳히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도 국제인권규약에 의거해 ‘한국의 열악한 공교육에 따른 사교육의 가중과, 사립학교가 지배하는 고등교육으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고, ‘경제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 무료 의무교육 제공단계’를 지적한 바 있다. 부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비평준화지역 등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더이상 흔들지 말고 무료 공교육제도의 강화를 주장하라.
또 진정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루 14시간, 16시간, 18시간씩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일상을 살펴보라. 소년노동을 강요하는 동남아시아를 야만이라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그 사회와,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일찍부터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각축장’으로 내몰아 문제풀이 요령습득경쟁을 통해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학벌주의 사회를 공고히 하려고 노동시키는 사회 중에 어느 사회가 더 야만적인가
사교육비가 투자처럼 인식되는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긴 자는 이긴 자로서 보상을 당연하게 요구하게 된다. 사회 상층에게서 사회적 책임의식이나 사회환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 고마움을 표명하는 구성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교육제도와 현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지독한 경쟁을 부추긴 데서 온 결과다.
한편, 전교조 부산지부는 최근에 인문계고교의 0교시수업, 보충수업, 야간강제자율학습, 불법찬조금 모금 등에 대한 국민감사를 신청했다. 감사원이 이를 받아들여 부산시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결정했는데 그 뒤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부산시교육청이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학교장들을 통해 학부모를 동원하는 등 감사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지 않은 것이다. 2001년 단체교섭을 2002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간까지 무성의로 일관하여 게을리한 부산시교육청은 급기야 전교조 조합원들을 연행하도록 했고 간부가 구속되는 사태를 발생하게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이 나라 교육현실을 자랑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야만’이라는 이름의 그것을.
홍세화/ 기획위원
편집 2002.10.27(일) 18:17
http://www.hani.co.kr/section-001012000/2002/10/001012000200210271817482.html
하지만 그 후 대략 1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칼럼을 읽고 한 치의 시대적 거리감 없이 요즘 글이라 느꼈던 것이 그러한 증거이기도하다. 2002년에 고민했던 이슈는 지금 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달라지지 않았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처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단순 되풀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안들이 몇 년전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이기는커녕 뒷걸음질 치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모습이다. 그렇게 열을 올리며 사회적 사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던 때는 지금보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였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고등학교 때는 적어도 행동하는 비판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이 그때보다 더 그럴 듯한 '갖춰진' 논리를 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어디까지나 '갖춰져' 있는 보기 좋은 논리일 뿐이다. 한 때는 큰 소리를 못내더라도 우리사회에 '적어도'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한다는 사명감을 운운했지만, 지금은 사명감은 잊은 채 현실에 쫓겨 의무감으로 신문을 보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그리고 숨가쁘게 변해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만큼은 빠르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천천히 둘러봐야할 후미진 곳에 시선이 닿기 위해선 좀 더 속도를 늦춰야한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 갈 수록 시선이 닿아야할 곳은 많아지고 소외는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빠른 물살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요즘 나부터도 현실이라는 물결에 쓸려 정신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만아니라, 시대가 야만으로 변화하고 있는 기분이라고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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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가, 야만인가/ 홍세화
최근에 우리 교육의 실상을 알게 해주는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서울대에서 ‘고교평준화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된다’는 연구서가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시교육청이 경찰력 투입을 요청하여 농성중이던 전교조 조합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케 한 사건이다. 두 사건은 그릇된 권위와 공권력으로 이미 처절하게 왜곡된 교육을 더욱 파행으로 몰아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서울대 연구서는 ‘고교평준화가 종교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그리고 사립학교 선택과 운영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자유를 주장할 만큼 한국사회의 인권수준이 대단히 높은가 보다. 또 국민의 3분의 2가 가톨릭임에도 ‘교육-종교의 분리’라는 공화주의 원칙에 따라 90% 이상의 고교생을 수용하는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배제하고,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평준화되어 있으며 모두 국립인 프랑스는 인권 미개국임에 틀림없다. 진정으로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가난한 사회구성원들에게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고 있는 사회현실에 먼저 눈을 돌려라. 무료 공교육제도를 강화하면 신자유주의의 적자인 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가 바라는 ‘인적자원’을 늘려 국가경쟁력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할 자유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자들, 즉 가진 자들의 국내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 계급·계층의 단순재생산구조를 더욱 굳히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도 국제인권규약에 의거해 ‘한국의 열악한 공교육에 따른 사교육의 가중과, 사립학교가 지배하는 고등교육으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고, ‘경제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 무료 의무교육 제공단계’를 지적한 바 있다. 부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비평준화지역 등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더이상 흔들지 말고 무료 공교육제도의 강화를 주장하라.
또 진정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루 14시간, 16시간, 18시간씩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일상을 살펴보라. 소년노동을 강요하는 동남아시아를 야만이라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그 사회와,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일찍부터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각축장’으로 내몰아 문제풀이 요령습득경쟁을 통해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학벌주의 사회를 공고히 하려고 노동시키는 사회 중에 어느 사회가 더 야만적인가
사교육비가 투자처럼 인식되는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긴 자는 이긴 자로서 보상을 당연하게 요구하게 된다. 사회 상층에게서 사회적 책임의식이나 사회환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 고마움을 표명하는 구성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교육제도와 현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지독한 경쟁을 부추긴 데서 온 결과다.
한편, 전교조 부산지부는 최근에 인문계고교의 0교시수업, 보충수업, 야간강제자율학습, 불법찬조금 모금 등에 대한 국민감사를 신청했다. 감사원이 이를 받아들여 부산시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결정했는데 그 뒤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부산시교육청이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학교장들을 통해 학부모를 동원하는 등 감사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지 않은 것이다. 2001년 단체교섭을 2002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간까지 무성의로 일관하여 게을리한 부산시교육청은 급기야 전교조 조합원들을 연행하도록 했고 간부가 구속되는 사태를 발생하게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이 나라 교육현실을 자랑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야만’이라는 이름의 그것을.
홍세화/ 기획위원
편집 2002.10.27(일) 18:17
http://www.hani.co.kr/section-001012000/2002/10/001012000200210271817482.html
Tuesday, September 14, 2010
Saturday, August 28, 2010
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만큼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 요즘이기도하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도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 하나에 좋아하는 구절을 읽는 것도 힘이된다. 오늘 트위터에 어떤 분이 리트윗을해서 읽은 구절 하나. 나 역시 장영희 교수님의 글에서 좋아하는 구절이었는데,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오늘 발견하니 때마침 마음에 더욱 와닿았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故 장영희 교수님
-얼마 전, '놀러와'에 김제동씨가 "It's not your fault" 라는 말을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열번이고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제동씨도 얘기 했다시피, 이 구절은 영화 <굿 윌헌팅>에 나온 대사이다. 어린 시절부터 상처 투성이인 주인공 맷 데이먼을 로빈 윌리엄스가 꽉 안아주며 "It's not your fault"라고 수없이 말해주었다. 문득 그 장면을 생각하니, 미국 교환학생시절, 나를 아껴주던 디아스 교수님이 생각났다. 한번은 싱가포르 쪽 언론 연구기관에 인턴십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멀리 사는 싱가포르 친구가 이래저래 알아봐 준것도 있고 나름대로 커버레터,레주메도 몇번이고 수정하고 보냈기에 기대반 설렘반으로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메일로 온 답장은, 내가 경제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이 기관에 성격이 안 맞을 뿐더러, 채용 계획도 없다는 이른바 탈락메일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디아스 교수님에게 가서 잘 되지 않았다고 한숨을 푹 쉬고 있었는데, 그 때 교수님이 나를 보고 지긋이 웃으며 하신 첫 마디는 "It's not your fault"였다. 그 뒤에 CRAZY한 경제 탓이다, 너를 몰라본 사람들이 손해다 등등 평소 유머러스한 교수님답게 탈락이 내 잘못이 아닌 이유를 하나하나 들어주셨다. 그리고선 마지막으로, 너는 소중하고 어디서나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는 학생이라고 난 네가 잘 될것이라 믿는다는 말을 덧붙여주셨던게 기억난다. 맷 데이먼에게 로빈 윌리엄스가 있었다면, 나는 디아스 교수님에게서 평생 잊지 못할 힘을 얻은 셈이다.
-나에게는 하느님이지만, 누군가에겐 부처님일 수도, 공자님일 수도, 우주일 수도 있는 이름만 다른 '무언가'가 나를 소리없이 응원하고 있다고 믿는다. 간절하게 꿈꾸는 목표를 향하는 길에, 힘이 쭉하고 빠지는 상황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서 그 '무언가'는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서포트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나아진다. 미사에서 어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엄마가 해주신 말이 있었는데, 요지는 나에게 온 사람들이 각자 내게 의미를 주는 사람임을 기억해야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스겟 소리일 수도 있지만, 하느님이 한 사람 한사람 응원하기엔 너무 바빠서, 자기 일을 대신할 천사를 내려보냈는데 그게 '인연, 친구,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보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에게는 위로받을 이유와 그것을 타당하게하는 존재가 있는 것 같다.
*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거기에 스며 있는 천사들의 속삭임과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응원 소리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잊지 말아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서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거야.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Sunday, August 22, 2010
남겨진 사람들
일주일 전 일이구나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은 다들 일상을 찾아아고, 살아가고 있다.
미안하면서, 슬프기도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히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하고. 그날을 통해 이런걸 깨달아가는게 나는 왜이리 미안할까.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어떻게 무슨 이야기를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음, 아무래도 나중에 글을 다시 써야겠다.
Saturday, July 17, 2010
향기
향기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둔하지는 않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사람에게서 그 사람만의 향기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엄마에게선 엄마 향이 나고 내 친구에게선 내 친구 향이 나고.
고등학교 때 뒤돌아서서 있는데 친구들이 '누구게~'하고 눈가리고 있으면, 대충 누가 장난을 치는지 향기로 감을 잡은 적도 있었다. 가끔 내 향은 뭘까 궁금해서 친구들한테 물어본 적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내 친구들은 "엄마 향기,푸근한 향기" 이런 대답을 듣곤했는데, 그럴때마다 웃어야하는건지 헷갈리곤했다. (10대때 엄마 향기는 조금....좀.... 그렇지 않는가!!!)
최근 故장영희 교수님의 신간을 읽고있는데, 거기서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겨울 날 피자 배달부가 집 문을 열었을 때 집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향기만으로 따뜻한 집이있는가하면 외로움이 풍기는 집이 있다고 말이다. 그 말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향 나쁜 향을 떠나서 감정이 느껴지는 그런 향기 말이다.
아무튼 흔한 향이라도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고약한 향수는 금방 잊혀지고 말지만(사절이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은은하게 풍기는 향은 그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거나 그 사람을 그 향으로 기억하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라도 내 후각이 기억하는 그 향은 그 사람만의 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 헤어진 연인이 자주 쓰던 향수의 냄새를 맡았을 때 문득 그사람인가 뒤돌아 본다고 하지 않는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친근한 사람들의 냄새를 길거리에서 맡을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더 뒤돌아보곤 한다.
향기를 통해 기억되는 사람들과, 향기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 때 그 시간들.
인간의 연상 능력이란.. 깜짝 깜짝 놀랄정도.
그리운 향기들이 많다! 보고싶다 친구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사람에게서 그 사람만의 향기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엄마에게선 엄마 향이 나고 내 친구에게선 내 친구 향이 나고.
고등학교 때 뒤돌아서서 있는데 친구들이 '누구게~'하고 눈가리고 있으면, 대충 누가 장난을 치는지 향기로 감을 잡은 적도 있었다. 가끔 내 향은 뭘까 궁금해서 친구들한테 물어본 적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내 친구들은 "엄마 향기,푸근한 향기" 이런 대답을 듣곤했는데, 그럴때마다 웃어야하는건지 헷갈리곤했다. (10대때 엄마 향기는 조금....좀.... 그렇지 않는가!!!)
최근 故장영희 교수님의 신간을 읽고있는데, 거기서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겨울 날 피자 배달부가 집 문을 열었을 때 집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향기만으로 따뜻한 집이있는가하면 외로움이 풍기는 집이 있다고 말이다. 그 말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향 나쁜 향을 떠나서 감정이 느껴지는 그런 향기 말이다.
아무튼 흔한 향이라도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고약한 향수는 금방 잊혀지고 말지만(사절이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은은하게 풍기는 향은 그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거나 그 사람을 그 향으로 기억하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라도 내 후각이 기억하는 그 향은 그 사람만의 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 헤어진 연인이 자주 쓰던 향수의 냄새를 맡았을 때 문득 그사람인가 뒤돌아 본다고 하지 않는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친근한 사람들의 냄새를 길거리에서 맡을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더 뒤돌아보곤 한다.
향기를 통해 기억되는 사람들과, 향기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 때 그 시간들.
인간의 연상 능력이란.. 깜짝 깜짝 놀랄정도.
그리운 향기들이 많다! 보고싶다 친구들!
Friday, July 16, 2010
할아버지
(동방신기 화면에 왜 루시드폴의 이 노래를 매치시켰는지 궁금하다;;)
저번주 할아버지의 77번째 생신이셨다.
가족들이 모였고, 한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막걸리 몇 잔이 들어가시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는 얘기를 말머리에 붙이셨다. 그러자 작은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는 그런 소리 하지 말으시라며 버럭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요즘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다른 세상으로 가시는 것에 빈자리를 많이 느끼신다고 했다. 몇 달전 할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분을 먼저 보내시고 더욱 허전해하시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우정하는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한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그리고 괴로운 일일까. 또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일일까. 급작스러운 사고도 아닌, '세월'이라는 흐름에 떠맡겨진 인간의 죽음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분 말이다. 아직 할아버지가 느끼시는 상실감을 알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막걸리 몇잔을 걸치시고 나도 빨리 가고 싶다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대강으로나마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새벽에는 세수를 하고 화장실 바닥에 흥건해진 물기를 화장지로 박박 닦고 나왔다. 할아버지께서 혹여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시는데 미끄러지지 않으실까 걱정이 되서였다.
어렸을적부터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엄하시고 완벽하시고 깔끔하시다고 묘사해왔다. 훤칠하신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옷을 멋지게 입을 줄 알는 할아버지. 냉철하기만하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눈물도 많고, 감성적이라는 분이라는 사실을 요즘에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손녀 딸 미국 가는 날 눈물을 훔치셨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놀라기도 놀랐지만 내 마음 속에 있던 할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이 녹아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손녀 딸 싱가포르에서 사는 동안 혹여나 허기지게 먹을까 싶어 큰 돈을 보내시고는 고맙다는 나에게 '잘하고 와라, 할머니 바꿔주마'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전 정기 검진을 다녀온 엄마가 여느때와 같이 할아버지께 다녀왔다고, 별 이상 없다고 전화를 하셨다한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는 "고맙다. 고마워"라고 연거푸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이 많으시다. 눈물도 많으시다. 사랑도 많으시다. 그 세가지를 이제서야 천천히 깨닫고 있다. 그 시대 할아버지처럼 버럭 화 내시고, 엄하시고, 냉철하신건 그저 감정표현에 서툴러서임을 알아가고 있다.
새벽에 화장실 물기를 닦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Tuesday, July 6, 2010
재미
1. 랩탑이 아닌 펜을 잡고 글을 써내려가는데 손이 뻐근했다. 마음도 같이 뻐근했다. 머리도 함께 뻐근해졌다. 오랜만에 글을 써내려가는게, 이런 표현하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좋았다'. 마치 한동안 운동을 쉬다가 다시했을 때 느끼는 그 뻐근함에서 오는 개운함이라고나할까??
1.1. 역시 손으로 글을 쓸때와 랩탑으로 글을 쓸때는 느낌도 다르거니와, 나오는 결과물도 다르다. 손으로 써내려가는게 더 어려운 이유는, 단어를 택하는데 더욱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주욱 써내려가 놓고 한 문장을 써내려 갈때마다 이전 문장들을 다시 읽어가며 누차 확인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걸린다.(한눈에 종이에 쓰여진 필체를 읽기란 의외로 힘들다. 왜냐하면 본인의 글씨체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객관적인 눈이 될 수 없어서, 어떤 것이 비문인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색한 문장이 있으면 커서를 옮겨가서 바로 수정이 가능한 랩탑에서 글짓기는 아무래도 '고민'을 덜하게 되는 것 같다.
1.2. 이제 책을 더 읽어야하고, 글을 많이 써야하고, 생각을 더 해야하고, 관찰해야하고, 더욱 들어야하며, 느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해져야한다!
1.2.1. 요새 해야할 것이 늘어난만큼 하고 싶은것도 늘어나고 있다. 음, 먼저 영화<시>를 보고싶고, 어쿠스틱 기타도 배우고 싶고, 배워서 <오,사랑>을 부르고 싶고, 재즈 피아노도 해보고 싶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안주에 맥주도 먹고 싶고,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하고 싶고,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남산타워 바라보며 책을 들고 나오고 싶고, 교수님도 어서 찾아뵈서 세상얘기하고 싶고, 마음가득 사랑도 하고싶고, 바쁜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 우정하고 싶고, 공연하나 보고싶고, 무한도전 놓친거 한자리에서 치킨 먹으며 보고싶고, 엄마랑 손잡고 미술관도 가고싶고, 돌아오는 길에는 인사동 가서 좋아하는 파스타 먹고싶고, 시집도 읽고 싶고, 수영장에서 배영도 하고싶고, 예쁜 원피스 하나 사고싶고, 그냥 덕수궁 걸으면서 아무생각도 없고싶고, 그러다 고민도하고 싶고, 영어 공부하고 싶고, 일본어 중국어도 배우고싶고, 모르는 음악을 찾아듣고 싶고, 그리워하는 이들을 보고싶다....
1.2.2. 음, 노는게 너무 많나? 그래도 가장하고 싶은건 어서 내가 꿈꾸는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다. 그러니까 당장 하고 싶은건 감내해야할 이유가 충분한거지?
2. 위의 음악 <오,사랑>은 루시드폴의 원곡이다. 물론 루시드폴의 음성도 두말할 것 없이 좋지만 이 곡은 유난히 이하나의 목소리로 듣는게 좋다. 그래서 무한 반복한다. 노래방 싫어하는 나지만, 이 노래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흥얼흥얼. 시보다 더 시적인 가사. 어쩜 이런 가사가?? 그리고 이하나 목소리가 어쩜 이렇게 좋은지.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기타와 함께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물론 그 반대가 되어 듣고 싶기도 하고.
Thursday, June 10, 2010
Monday, May 31, 2010
Thursday, May 27, 2010
글
이 새벽에도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배반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살아가는 일에 매번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닿는 마음은, 찰나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입니다.
아직 미혹이라 매번 이 평범한 자각에 이르기까지 가슴이 확 뒤집어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만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로새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로 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제가 힘에 부치는 약속을 질러 한 것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귀한 당신.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늘이니 자괴심을 갖지 말아요.
힘껏 살아야 강렬하고 견고한 사유를 하지요. 여기가 끝이 아니니 어서 힘을 내서 또 걸으세요. 멀리, 끝없는 저 길 위를.
1996년 초가을에
신경숙 씀
살아가는 일에 매번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닿는 마음은, 찰나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입니다.
아직 미혹이라 매번 이 평범한 자각에 이르기까지 가슴이 확 뒤집어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만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로새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로 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제가 힘에 부치는 약속을 질러 한 것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귀한 당신.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늘이니 자괴심을 갖지 말아요.
힘껏 살아야 강렬하고 견고한 사유를 하지요. 여기가 끝이 아니니 어서 힘을 내서 또 걸으세요. 멀리, 끝없는 저 길 위를.
1996년 초가을에
신경숙 씀
Friday, April 23, 2010
만들어진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사실 자체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음, 예를 든다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문기사, 소위 언론이 정한 머릿기사들에 사회적 아젠다가 좌지우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언론의 기능이라는 것이 사회적 아젠다를 끌어올리고, 그것을 공론화 시키는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기능이지만, 그만큼 참으로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정말 주목해야할 일들이 사장되는 경우도 있고, 주목받지 않아도될 일들이 가치 이상으로 수면위에 동동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것을 실감합니다. 또한 떠오른 이슈에 대해 언론인 혹은 언론사의 사조에 따라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타인이 만들어 낸 것인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우울과 불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혹자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사실은 병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태어날 때부터 느낄 수 밖에 없는 감정의 패턴일뿐이라고합니다. 우울증 역시 사회가 만들어낸 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어떠한 '무리'들이 인간의 정신이나 감정을 '병'으로 취급해서 의료사업이라는 범주에 넣었다고나 할까요. 백퍼센트 동의할 수 없는 얘기이지만,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아, 여기서 말하는건 '남여'간의 사랑이라고 한정합니다.) 남여간의 사랑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흔히 사랑이라고 칭하는 감정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 그 상황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던 사람이 그립다는 건 사실 좋았던 추억을 그리워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변해버린 '현재의 상대'를 인정하기보다 그 때 그 마음, 그 순간을 함께했던, '그 때 그 사람만'을 그리워한다는 겁니다. 헤어진 커플이 다시 만났을 때 그렇지 않은 커플에 비해 다시 헤어질 확률이 높은 것은, 아마 이상적인 추억을 되돌릴 수 있을거란 기대가 현실과 너무나 쉽게 어긋나기 때문입니다.(그간 머리로 그려놓은 상대는 그저 '환상속의 그대'였을 뿐)음, 이건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때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확률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사랑해야겠다는 그 타이밍에 그 사람이 쏙 들어온 것은 순전히 타이밍의 힘이 아닐까요. 물론 타이밍이 만들어낸 그 인연의 위대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절묘한 타이밍 속에서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사랑하는게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속>을 보면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여러 명의 목격자가 진술을 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미궁 속으로 빠지지요. 목격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사건'에 대한 진술을 자신의 시선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하나없는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존재했을 때 그 사실은 사실이 일어났던 현재 진행형일 때만 진실로 존재할런지도 모릅니다. 그 시점이 지나고나서는 각자가 만들어낸 함정 아닌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의 함정 말입니다. 하물며 사건 현장에서 똑같은 사실을 겪은 등장인물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자기식대로 곡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가끔은 그 한계가 인간을 살아가게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은 글의 내용과는 관련없는...ㅋㅋ)
Friday, April 16, 2010
to do(....ing)
숙소/임시숙소 예약
휴대폰 알아보기
한복
정장
노트북 케이스
우산
싱가포르 책자
하이디가 부탁한 약
한국 기념품
한국 휴대폰 정지
레주메/커버레터/USB
테드엑스싱가포르
언어교류/성당 단체
환전
썬블럭 주문
학교가서 증명서/교수님 뵙기
신분증/통장 등 복사
디아스 교수님 소포
다른 편지 정리
방 정리
Thursday, April 8, 2010
사과
근 몇개월간 너무나 감성에 젖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성에 젖으면 젖는대로 지겨워질 때 즈음에 박차고 나오는데, 이번엔 기간이 꽤 길었다.
웬만해서는 정말하기 싫은 후회가 밀려올 정도이다. (블로그 포스트 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매달 줄어가는 글, 감상에 젖어 쓰고 나면 아침에 보기 민망한 글이라 비공개로 전환한게 꽤 많다)
문득 내가 훌훌 낭비해버린 시간을 곱씹어보니, 자괴감도 들다가 '아니야, 이땐 이걸했고..아니야, 이땐 이래서..'라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아, 내가 가장 꺼려하는 짓을 내 손으로 하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가장 어리석고 쓸데 없는 행위.
꿈을 찾는 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니하고, 과연 맞는 길인가 고민만 했다. 물론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뭘 해보겠다 싶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어긋나서 괜시리 짜증도 내고.
고등학교 선생님이 "고민할 시간에 해라"라는 말을 항상 해주셨는데, 정말 명언이다.(참고로 예전 포스트에 언급한 이상은씨 노래를 잘하는 선생님.)
다시 스프링처럼 퐁 튀어올라서 예전에 자꾸 일을 벌이고 꾸역꾸역 해나가는 나로 돌아가고 싶은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역시 어떠한 감정이든 지겨워질 때까지 방치하면 언젠가 헤어나오기 마련. 다만 기간의 문제이지만;;)
감성에 젖으면 젖는대로 지겨워질 때 즈음에 박차고 나오는데, 이번엔 기간이 꽤 길었다.
웬만해서는 정말하기 싫은 후회가 밀려올 정도이다. (블로그 포스트 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매달 줄어가는 글, 감상에 젖어 쓰고 나면 아침에 보기 민망한 글이라 비공개로 전환한게 꽤 많다)
문득 내가 훌훌 낭비해버린 시간을 곱씹어보니, 자괴감도 들다가 '아니야, 이땐 이걸했고..아니야, 이땐 이래서..'라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아, 내가 가장 꺼려하는 짓을 내 손으로 하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가장 어리석고 쓸데 없는 행위.
꿈을 찾는 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니하고, 과연 맞는 길인가 고민만 했다. 물론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뭘 해보겠다 싶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어긋나서 괜시리 짜증도 내고.
고등학교 선생님이 "고민할 시간에 해라"라는 말을 항상 해주셨는데, 정말 명언이다.(참고로 예전 포스트에 언급한 이상은씨 노래를 잘하는 선생님.)
다시 스프링처럼 퐁 튀어올라서 예전에 자꾸 일을 벌이고 꾸역꾸역 해나가는 나로 돌아가고 싶은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역시 어떠한 감정이든 지겨워질 때까지 방치하면 언젠가 헤어나오기 마련. 다만 기간의 문제이지만;;)
Friday, April 2, 2010
한달(수정 중)
엘리자베스 어머니께서 나의 거처를 구하신다고해서 하루빨리 싱가포르 정착 날짜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따로 부탁드린적 없는데, 마치 자기 딸처럼 챙겨주시는게 너무 고맙고 송구스럽다. 믿을만한 지인에, 강아지 없는 집을 구하고 계신단다.(강아지 공포증을 어필한 결과)
이래저래 언젠가 가겠지 했는데, 집 문제 때문에 담당자님께 문의 메일을 보내고 답신을 받았다. 막연히 5월말이나 6월초로 생각했던 파견이 아무래도 예상보다 빨라질 것같다. 가기 전까지 전시회/박람회 아르바이트를 간간히 뛰고, 업무내용에 부차적으로 필요한 컴퓨터 스킬을 마스터할 계획이다.(컴퓨터 프로그램때문에 허둥지둥하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서).
음, 물론 넋놓고 있었던 영어도 좀 더 부지런히 해야할것이고. 가기 전까지 일주일에 세번 이상 손으로 논술1 작문1편씩 써보고, 2개 신문사의 신문도 꾸준히 정독할 계획이다. 생각을 손으로 써내지 않으니 점점 무식해져가는 것 같아서.
최근 관심갖고 있는 '문화예술인의 지식 동호회(?)' 비슷한 뉘앙스의 세계적 단체가 있는데 우리나라뿐아니라 싱가포르에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포럼이나 강연에 참가해보고 싶다. 암튼 파견 전까지 그곳에 있는 전시컨벤션 분야 조사 좀 탄탄히 하고, 다시 레주메와 커버레터를 손봐야할 것 같다.
윽, 한 달안에 다할 수 있겠지.
(계획을 좀 더 상세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Friday, March 26, 2010
Tuesday, March 16, 2010
-
말, 표정, 몸짓. 이런거 진심을 담지 못한다. 눈빛. 그게 진심을 담는다. 가끔은 본인도 모르는새 숨기고픈 진실을 말한다. 무심코 거울을 봤을 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응시할 때, 돌아서면 소름이 끼칠정도로 사실적인 내 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게 너무나 슬프다. 상대에게서 읽고 싶지않았던 그 눈빛을 읽었을 때만큼.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눈빛은 거짓말이 없다.
Friday, March 5, 2010
쓰고싶은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나오는대로 자꾸 쓰다가 지우다 그대로 비공개로 사장되어 버리는 글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버려둔 블로그. 오늘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인데. 할 말이 많아서인지 기분탓인지 오늘도 그냥 접고. 아무튼 최근에 머리가 탕 울리는 글 하나를 찾았습니다.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 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것지. 물 한 모금 달라고.
- 혼불中,최명희 -
크-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오고 있을 것이다... 다른 문장도 그렇지만 특히 이 문장이 그리 마음에 와닿을 수가.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친구든 연인이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니 경이로울 정도로 그 절묘함에 놀라곤 합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선택. 수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뛰어 넘은 채, 수십년 모르고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친한 친구, 연인으로 인연이 닿는 사실이 참 감사하고도 소중한 일이지요. 이름이 로또만 아니였지, 그러고보면 우리는 매순간 '인연의 확률'에서 승자 혹은 패자가 되는 듯합니다.(패자라하면 악연이겠지요)
아무튼, 누군가 나에게 먼 길을 오고 있을까도 궁금하지만, 내가 어떤 익명의 사람에게 먼 길을 가고 있는지 더 궁금합니다. 지금 나를 채워 주고있는 사람들로도 충분히 따뜻하고 소중한데 또 내 인생을 채워 줄 사람들이 더 있을까 하는 바보같은 의문도 들기도하고. 누군가에게 가는 길이건,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오는 길이건. 서로 지나치지 않고, 서로를 알아보고 주저 앉아 물 마시며 웃을 수 있기를.
(조근조근 존댓말로 글을 쓰는 이동진 기자의 문체가 참 좋아보여서 존댓말로 써보니, 오 새롭네요)
Thursday, February 11, 2010
나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는 챙겨보는 프로그램 두세개를 제외하고는 아예 보지 않는.
언제부터인가 무심코 EBS를 보다보니, 애비로드라는 비틀즈스러운 이름을 딴 라이브 프로그램을 발견.
영국 프로그램인가?
낯익은 그리고 낯설은 좋은 뮤지션들이 많이 나온다.
소파에 푹 누어 멍하니 보고있으면, 나른하니 기분이 그만이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다.(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방영시간을 모른다. 정말 무심코 틀면 보게됨)
나른하고 싶은 오늘.
Friday, February 5, 2010
따뜻
감사해야할 감사할 사람들이 내 주변에 가득하다. 따뜻하다 정말.
이럴 때 power of God을 실감한다.
좋은 사람들에서 에너지를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나누는 것.
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이럴 때 power of God을 실감한다.
좋은 사람들에서 에너지를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나누는 것.
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Saturday, January 23, 2010
Wednesday, January 20, 2010
1st journey,2010(keep updating)
4박5일 done
항공권 발권done
일정(오사카&쿄토)
루트(블로그 자료 수집)not yet.. crazy
비용 (교통비 줄이자)
숙소(오사카done 쿄토done)
코이->일정 알리기done, 한국 기념품 챙겨가기 ing
책자->교보
환전done
꼭 가고 싶은 곳->쿄토대 쿄토애니메이션센터
해보고 싶은 것->일본 성당에서 미사보기, 쿄토대 카페테리아에서 글쓰기 책읽기, 엽서, 인디밴드 공연
맛보고 싶은 것->초초초초밥!! (맛집을 찾자)
사고싶은것->안 살것임.ㅠㅠ
보고싶은 것->에반게리온, 몬스터, 마스터 키튼 등 아니메 센터 찾아보기
생각하고 싶은 것->...!!
1st journey in 2010 =
Monday, January 11, 2010
Saturday, January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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