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3, 2010
해석
고등학교 때는 교과서가 해석해준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대로, 시험을 위한 시 배우기에 담담했다.
"이 시의 주제는.. 시인은 짝사랑을 담담하게 보내는....블라블라, 이 시의 주제는.. 독립에 대한 갈망을 사랑에 빗대어.....블라블라, 시인의 마음을 함축한 단어로 이 시의 핵심주제......블라블라"
어쨌든 시험은 봐야하는거니까 해석해주는대로 이해했다.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시 해석은 그래도 충실하게 외워댔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이따금 마음 속으로 나름의 조용한 반항을 했다.
'아니, 이 시인은 짝사랑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다음 날 화를 누르면서 쿨한척 시 쓴것 아니야? .....이 시만큼은 독립에 대한 갈망을 쓴게 아니라, 진짜 사랑에 대한 갈망만 떠올렸을 수 있잖아......주제 함축? 그냥 아무 의미없이 쓴 단어 아냐???... 시인이 살아나서 설명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는거아냐???"
'시대 상황과 시인의 삶 등등으로 특정 시를 해석하는 것은 후대 사람의 해석에 불과하다! 시인빼고 아무도 모른다!' 라고 문학 시간에 외치고 싶었지만, ㅎㅎ 현실은 배운대로 착하게 시험을 치뤘다.ㅎㅎ맞힌 문제에 환호하며 ㅎㅎ
아무튼 가끔 창작자도 놀랄 정도로 해석이 과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자신이 만들어 낸 것에 의도치 않게도 수많은 역사적, 예술적, 시대적 부연 설명들이 붙는다면....? 내가 창작자라면 그 해석들에 반박하기도 귀찮아서, 해석도 또다른 창작이겠거니 넘어갈 것 같다. (그림이든, 만화든, 영화든, 음악이든, 시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이 시를 읽으며 느낀 나름의 해석은 창작활동(?)ㅎㅎ (거창하네.)
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
짝사랑에 대한 간절함을 담담하게 그린 시라고 배워왔다. 근데 나는 오늘 이 시가 전혀 사랑 얘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대신 '꿈'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대'와 '사랑'을 '꿈'으로 치환하여 읽어 보니 제법 내가 느낀 바와 어색하지 않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꿈으로 읽었을 때 시가 절실히 와닿았다.
(아, 원래 시는 이런건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빚어내는 것이 위대한 작품인가? 그게 예술인가? 윽, 어렵다.ㅎㅎ+윽, 쓰고보니 허세같음 ㅎㅎ)
또 밤이 지났다. 시 얘긴 그만하고 어서 돌아가 할 일 해야지...ㅠㅠ
- 1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2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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