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쓰여진 날짜를 보지 않고 읽었다. 요즘 일어난 일이구나하고 읽어내려갔는데 작성일은 2002년이었다. 2002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했던 시사 토론 동아리에서 일년에 한번 토론집을 냈었는데, 그때 글감으로 선택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당시 동아리원끼리 찬반을 나눠 이슈마다 자신의 글을 올렸는데, 그때 고교평준화에 한창 열을 올렸던 나는 찬성측에서 할말도 쓸말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글인지 먼지 쌓인 토론집을 펴봐야 생각나겠지만, 그 때 글을 쓸 때 했던 생각 하나는 정확히 기억난다. 바로 우리 교육이 지금보다는 천천히라도 조금씩이나마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후 대략 1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칼럼을 읽고 한 치의 시대적 거리감 없이 요즘 글이라 느꼈던 것이 그러한 증거이기도하다. 2002년에 고민했던 이슈는 지금 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달라지지 않았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단골 손님처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단순 되풀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안들이 몇 년전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이기는커녕 뒷걸음질 치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모습이다. 그렇게 열을 올리며 사회적 사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던 때는 지금보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였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고등학교 때는 적어도 행동하는 비판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이 그때보다 더 그럴 듯한 '갖춰진' 논리를 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어디까지나 '갖춰져' 있는 보기 좋은 논리일 뿐이다. 한 때는 큰 소리를 못내더라도 우리사회에 '적어도'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한다는 사명감을 운운했지만, 지금은 사명감은 잊은 채 현실에 쫓겨 의무감으로 신문을 보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그리고 숨가쁘게 변해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만큼은 빠르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천천히 둘러봐야할 후미진 곳에 시선이 닿기 위해선 좀 더 속도를 늦춰야한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 갈 수록 시선이 닿아야할 곳은 많아지고 소외는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빠른 물살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요즘 나부터도 현실이라는 물결에 쓸려 정신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만아니라, 시대가 야만으로 변화하고 있는 기분이라고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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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가, 야만인가/ 홍세화
최근에 우리 교육의 실상을 알게 해주는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서울대에서 ‘고교평준화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된다’는 연구서가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시교육청이 경찰력 투입을 요청하여 농성중이던 전교조 조합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케 한 사건이다. 두 사건은 그릇된 권위와 공권력으로 이미 처절하게 왜곡된 교육을 더욱 파행으로 몰아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서울대 연구서는 ‘고교평준화가 종교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그리고 사립학교 선택과 운영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자유를 주장할 만큼 한국사회의 인권수준이 대단히 높은가 보다. 또 국민의 3분의 2가 가톨릭임에도 ‘교육-종교의 분리’라는 공화주의 원칙에 따라 90% 이상의 고교생을 수용하는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배제하고,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평준화되어 있으며 모두 국립인 프랑스는 인권 미개국임에 틀림없다. 진정으로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가난한 사회구성원들에게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고 있는 사회현실에 먼저 눈을 돌려라. 무료 공교육제도를 강화하면 신자유주의의 적자인 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가 바라는 ‘인적자원’을 늘려 국가경쟁력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할 자유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자들, 즉 가진 자들의 국내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 계급·계층의 단순재생산구조를 더욱 굳히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도 국제인권규약에 의거해 ‘한국의 열악한 공교육에 따른 사교육의 가중과, 사립학교가 지배하는 고등교육으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고, ‘경제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 무료 의무교육 제공단계’를 지적한 바 있다. 부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비평준화지역 등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더이상 흔들지 말고 무료 공교육제도의 강화를 주장하라.
또 진정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루 14시간, 16시간, 18시간씩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일상을 살펴보라. 소년노동을 강요하는 동남아시아를 야만이라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그 사회와,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일찍부터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각축장’으로 내몰아 문제풀이 요령습득경쟁을 통해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학벌주의 사회를 공고히 하려고 노동시키는 사회 중에 어느 사회가 더 야만적인가
사교육비가 투자처럼 인식되는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긴 자는 이긴 자로서 보상을 당연하게 요구하게 된다. 사회 상층에게서 사회적 책임의식이나 사회환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 고마움을 표명하는 구성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교육제도와 현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지독한 경쟁을 부추긴 데서 온 결과다.
한편, 전교조 부산지부는 최근에 인문계고교의 0교시수업, 보충수업, 야간강제자율학습, 불법찬조금 모금 등에 대한 국민감사를 신청했다. 감사원이 이를 받아들여 부산시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결정했는데 그 뒤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부산시교육청이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학교장들을 통해 학부모를 동원하는 등 감사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지 않은 것이다. 2001년 단체교섭을 2002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간까지 무성의로 일관하여 게을리한 부산시교육청은 급기야 전교조 조합원들을 연행하도록 했고 간부가 구속되는 사태를 발생하게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이 나라 교육현실을 자랑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야만’이라는 이름의 그것을.
홍세화/ 기획위원
편집 2002.10.27(일) 18:17
http://www.hani.co.kr/section-001012000/2002/10/0010120002002102718174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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