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16, 2010
할아버지
(동방신기 화면에 왜 루시드폴의 이 노래를 매치시켰는지 궁금하다;;)
저번주 할아버지의 77번째 생신이셨다.
가족들이 모였고, 한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막걸리 몇 잔이 들어가시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는 얘기를 말머리에 붙이셨다. 그러자 작은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는 그런 소리 하지 말으시라며 버럭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요즘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다른 세상으로 가시는 것에 빈자리를 많이 느끼신다고 했다. 몇 달전 할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분을 먼저 보내시고 더욱 허전해하시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우정하는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한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그리고 괴로운 일일까. 또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일일까. 급작스러운 사고도 아닌, '세월'이라는 흐름에 떠맡겨진 인간의 죽음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분 말이다. 아직 할아버지가 느끼시는 상실감을 알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막걸리 몇잔을 걸치시고 나도 빨리 가고 싶다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대강으로나마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새벽에는 세수를 하고 화장실 바닥에 흥건해진 물기를 화장지로 박박 닦고 나왔다. 할아버지께서 혹여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시는데 미끄러지지 않으실까 걱정이 되서였다.
어렸을적부터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엄하시고 완벽하시고 깔끔하시다고 묘사해왔다. 훤칠하신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옷을 멋지게 입을 줄 알는 할아버지. 냉철하기만하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눈물도 많고, 감성적이라는 분이라는 사실을 요즘에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손녀 딸 미국 가는 날 눈물을 훔치셨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놀라기도 놀랐지만 내 마음 속에 있던 할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이 녹아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손녀 딸 싱가포르에서 사는 동안 혹여나 허기지게 먹을까 싶어 큰 돈을 보내시고는 고맙다는 나에게 '잘하고 와라, 할머니 바꿔주마'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전 정기 검진을 다녀온 엄마가 여느때와 같이 할아버지께 다녀왔다고, 별 이상 없다고 전화를 하셨다한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는 "고맙다. 고마워"라고 연거푸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이 많으시다. 눈물도 많으시다. 사랑도 많으시다. 그 세가지를 이제서야 천천히 깨닫고 있다. 그 시대 할아버지처럼 버럭 화 내시고, 엄하시고, 냉철하신건 그저 감정표현에 서툴러서임을 알아가고 있다.
새벽에 화장실 물기를 닦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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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손녀시네요. 자녀손들이 잘 모시는 가운데 건강하고 즐거운 여생을 누리시게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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