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9, 2010

선생님2

어제 친분이 있던 교수님께 약 1년 만에 메일을 보냈다. 밀린 신문을 읽다가 금새 지루해져 갑자기 생각난 선생님께 메일을 썼다. (나는 존경하는 은사님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고 싶다.) 때마다 찾아뵌다고 하고 못 지킨 게 1년이 넘어 간다; 타전공 과목 선생님이었는데, 무작정 듣고 싶었던 과목에 쭐래쭐래 찾아 들어간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수업이었다. 그 학문과 반대 날개를 달고 있는 경제학에서 찾아 온 학생이어서 그런지 말씀은 안하셨지만 신경을 많이 써주신 것 같다. 쉬는 시간에 자판기 300원짜리 커피를 쏘는 넉넉함이라든지, 수업 끝나고 수업 내용에서 모르는 것은 없었는지, 요즘 읽는 책은 어떤 책인지 한 번 더 물어봐 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3~4년이 흐른 지금,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선생님 강의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 후 다음 학기에 선생님의 다른 과목을 신청했었는데, 친분이 쌓여 편해진 탓에 지각도 엄청 해댔다;(아 부끄럽고 죄송하다;) 아무튼 요지는 이게 아니고, 그 때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생각에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계기가 그때였다고 해야하나. 나는 영문학을 복수 전공으로 기웃거리다가 한 과목 듣고 나서, 차라리 내가 관심 있는 과목을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들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 내렸다. (그 결정 때문에 경제학을 단일전공 하는 마냥 내키지 않는 상황에 닥치긴 했지만.;;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경제학 48학점을 채워가면서 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수업시간에 익힌 경제학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경제학에서도 여러 관점이 있지만, 그 때 나는 교수님들의 특정 목소리만 모아들었다;) 교수님들의 논리는 학생 입장에서는 참으로 당연하게 느껴져서, 자칫하면 그것만이 세상의 진리이자 정답인냥 생각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실감) 그 때 한창 한-미FTA 관련해서 논란이 많이 일었던 시점이었는데 좌우 양 날개에 서 있는 전공과목과 타전공을 한꺼번에 들으면서 나와 내 친구는 혼란 상태에 빠졌다. 3시간 동안 한-미FTA의 정당성에 관한 전공 교수님 의견에 한창 수긍하다가, 15분의 텀을 두고 연이어 있는 타전공 수업에서는 FTA 체결의 부당함을 그리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해야했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학문에 관심을 끄고 자기 전공만 판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다. 생각의 틀에 갇히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말이다. 내가 만약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철저히 짝눈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세상을 짝눈으로 바라보곤 하지만, 그래도 극단에 서있는 두 학문을 접하면서 '적어도 다른 한편엔 틀린 얘기가 아니라 다른 얘기가 있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얻었다. 선생님의 수업이 생각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수업 시간 외에 나눴던 얘기였다. 그 때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사소한 농담이라도 던지며 교수와 학생의 벽을 허물려고 하셨다. 일 년에 두 번 장학금 신청 때문에 잠깐 얼굴만 보고 나왔던 담당 교수님보다 친근했다. (그나마 얼굴보고 했던 장학금 신청은 이제 담당 교수님 승인 없이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대학에서 내 꿈을 물어봐주셨던 유일한 교수님이기도하다. 학생의 꿈에 대해 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당신이 겪어왔던 경험으로 공감을 대신해 주셨다. 오랜 시간 알아온 분이지만 말을 쉽게 놓지 않고 존칭을 붙이며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 오늘 선생님께 답장이 왔기에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다. 어제 메일 내용에 요즘 근황을 늘어놓으면서 신념을 잃어간다, 그동안 너무 오만했다. 등등의 말을 쏟아냈는데, 선생님의 답장을 받고 가슴이 훅 찔렸다. "지금 필요한건 신념이 아니라 자신감 같은데요? 나도 그 시기를 겪었고 그 시기에 있는 학생들을 보면, 스스로 오만했다고 반성할 때가 자신감이 부족할 때더군요. 내가 아는 뫄뫄씨는 열정도 능력도 가득한 사람입니다...........취직해서 거하게 살 생각하지 말고, 취직 전에도 작은 밥이나 먹으면서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의 내용. 여전히 선생님은 정곡 찌르기에 달인이시다. 메일을 보고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감사했다. 선생님이 생각하신 만큼 열정도 능력도 그리 가득하지 않은데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찔리기도 엄청 찔렸다. 예전에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와 선생님, 나 이렇게 짬뽕 한 그릇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은 짬뽕을 드시며 '요즘 리포트랑 시험지 보니까 뫄뫄씨 글 많이 늘었던데요?' 라고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 때 한창 스터디를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진 시기였는데, 지금처럼 엄청 찔렸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구나, 할 수 있구나'라는 단순한 마음도 생각났다. 다시 시작해보자고. 언젠가 더 공부할 생각은 없냐고 대학원 진학을 권하셨던 적이 있었다. 요즘 뜻 하는 대로 삶이 굴러가지 않아 속상할 때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선생님께 말하면 분명 좋은 소린 듣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리를 휘젓는다. 지금 내 고민이 많다고 해서 다른 자리의 고민이 적어 보일 뿐인 거라고. 내가 그 길을 택했다면 지금만큼의 또 다른 고민에 직면했을 거라고. 좀 더 생각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질 때 해도 좋을 후회라 생각한다. 그 때가 되면 도피성 심리가 아니라, 정말 내 진심을 찾을 수 있겠지. 아무튼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정신 차리고 살아가고 싶다. 좀 더 간결하고 재미있게. 그러다보면 언젠가 선생님의 칭찬이 부끄럽지 않게 들리겠지.

4 comments:

  1. 良い話だなーT_T

    He's what all educators should be.
    I cheer for you til you become a smart worker and pay the grant back to him.

    ReplyDelete
  2. ありがとう!
    先生にも, そしてコイグンにも大きくおごるその日を忘れないで待っていて! 期待してください!!

    ReplyDelete
  3. 아름다운 사제간의 이야기군요. 그런 좋은 은사님을 가진다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

    ReplyDelete
  4. 네 ㅋ맞아요.ㅎㅎㅎ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라 항상 감사하기도 하고요 ㅎㅎ

    Reply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