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9, 2016

[책을 읽어보세] 욕망과 희망 사이에서_(모래의 여자_아베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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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코보_<모래의 여자>


  <모래의 여자>는 모래 해변으로 곤충 채집을 나섰다가 낯선 마을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모래 구덩이에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미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의 목숨을 모래에 빼앗긴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햇볕이 채 들지도 않는 모래 구덩이에서는 끊임없이 모래를 퍼내야 최소한의 음식과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교사로서 평범한 삶을 지내던 주인공은 왜 자신이 이곳에 갇혔는지, 왜 끊임없이 모래를 퍼내야하는지 등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만 아무도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내내 불안과 분노, 좌절을 겪는 남자와는 달리 여인은 이 기괴한 생활을 지나치게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그녀는 바깥세상으로 탈출을 성가신 일이라고 여기며, 모래 구덩이가 바깥사람들의 삶보다 나을 것이라 자부한다. 이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했던 남자는 소설 후반부 ‘그것’의 발견으로, 그토록 기다려온 탈출을 목전에 앞두고 모래 구덩이에 안주하고 만다.

  고등학생 때 가장 한심해 보였던 어른들은 신문 한 자 읽지 않고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저 돈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당시 내가 마주했던 어른들은 선생님들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사회 문제에 열심히 나섰던 전교조 선생님들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사회 문제에 대해 숨죽이며 수업만 강요하는 보수 성향의 선생님들에게는 이유 없는 반항심이 생겼다. 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사는 애먼 사촌동생에게 SOFA 협정 개정을 고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언젠가는 전교조 소속이었던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경찰서에 소환되어 그 후 며칠간 자습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은 당장이라도 혈서를 써내려 갈 듯 한 기세로 대학생이 되면 가장 먼저 세상의 부조리함을 바꾸겠다고 굳게 다짐하던 날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직후 독립투사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고 마냥 놀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학점을 관리해야했고 취업을 위해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학교 로비 앞에서 성희롱 교수 퇴진을 외치는 사회학과 운동권 선배가 깃발을 흔들 때, 그 옆에서 조용히 음료수를 뽑아 서명장에 이름을 갈기고 강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명 하나로 면죄부를 얻은 것 같았지만 이내 부끄러움이 몰려와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지나치게 순수했음을, 아직 세상을 몰랐던 호기로운 나이였다고 치부하며 화끈 거리는 얼굴을 재빨리 지워냈다.

  시종일관 어둡고 비관적인 소설 후반부에 남자가 ‘그것’을 발견한 순간은 소설 전체에서 주인공이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의 발견으로 인해 결국 그토록 갈망하던 모래 구덩이에서 탈출을 목전에 뒀음에도 남자가 혐오하던 현실에 스스로 주저앉고 만다. 주인공에게 ‘그것’의 발견은 부정하던 현실에서 우연히 찾은 욕망이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희망으로 다가왔으리라.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죽도록 벗어나고자하는 현실에서 우연히 생겨나는 사소한 욕망들이 모여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 그간 마냥 긍정적으로 불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이기도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동료의 별명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가 닥친 현실이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희망 역시 비관과 낙관을 하나의 모습으로 담고 있는 셈이다.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어른의 모습과 지금 나는 닮은 점이 많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지금 나를 발견한다면 맹렬히 비난을 쏟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그 때의 나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은 이전처럼 ‘네가 어리고 순수해서 잘 몰랐던 거야’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고 싶지만, 이곳에서도 내일을 살게 하는 욕망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 일 것이다. 처음에는 차마 희망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사소한 욕망들이 모여 <모래의 여자> 주인공이 그랬듯 희망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에 순응하는 삶도 있음을 말해 줄 것이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삶의 옳고 그름은 구분되고 판단될 수 없음을, 발버둥 치다가 주저앉고 그래도 다시 희망을 품어 보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이 곳이라는 사실 말이다.


Sunday, October 2, 2016

[책을 읽어보세] 인간은 공간을 꿈꾼다 (비밀기지 만들기_오가타 다카히로)

비밀기지 만들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비밀기지 만들기_오가타 다카히로>

  부산의 한 청소년 복지 시설인 '수국마을'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한 복도식 낡은 기숙사를 허물고, 아늑한 마을 형태를 갖춘 청소년 거주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건축가는 아이들과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생활공간에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했고, 오랜 단체 생활에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개인 공간’임을 알아냈다. 다수의 인원이 한 방을 사용해 사실상 개인 공간이 없었던 과거 시설과 달리, 제한적인 면적을 최대한 활용해 소수의 인원이 한 방을 사용하도록 했고, 건물 내부에는 언제든 들어가 혼자 책을 보거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비밀기지 같은 작은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 후 그간 공동생활만 해왔던 청소년들에게 수국마을은 ‘나와 우리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고향이 없는 청소년들은 시설을 나와 사회로 자립한 후 이곳을 나의 추억이 머무는 '내 방, 내 고향'으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통제만을 강요하는 단체 공간이 아닌, 공동생활 공간과 개인 공간의 조화를 통해 공간의 힘으로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진정한 자립을 이루어낸 사례였다.


  인간의 소유욕은 사회적 관계나 물질적인 것들에 다양하게 적용되지만 그 중 가장 본능적인 소유욕은 바로 ‘공간’에 대한 욕구이다. 공간을 소유하고자하는 인간적 욕구는 처음 어머니의 자궁에서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재현하고자하는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갓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들은 커튼 뒤, 테이블 밑, 이불 속으로 시시 때때로 숨어 들어가고, 이 시기 아기들에게 눈에 띄는 후미진 공간은 가장 좋은 놀이터이다.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은 어른들에게 들킬지언정 비밀기지를 만들어 봤거나 완벽한 비밀기지에 대한 상상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시골 할머니 댁의 이불 방이 그러한 공간이었다. 그 어둡고 비좁던 공간에 들어가 낮잠을 자기도하고, 같이 놀러온 동생들과 몰래 어른들의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곤 했다. 작은 이불 방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편안함'이 좋았다.


  <비밀기지 만들기>는 방, 도시, 건물, 자연, 폐허에서 사물들을 활용해 말 그대로 '비밀기지'를 만드는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실제 조사를 통해 어른들이 어릴 적 만들었던 비밀기지 사례와 저자가 추천하는 비밀기지 설계도까지 세세히 수록해 두었다. 다양한 비밀기지의 유형과 제작 시 주의할 점을 사뭇 진지한 문체와 그림으로 서술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저자 오가타 다카히로는 '일본기지학회'라는 다소 흥미로운 이름의 학회에서 활동하며 여러 비밀기지 사례를 조사하고, 아이들을 위한 비밀기지 만들기를 실행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아이들이 생애 처음 비밀기지를 만들며 위험과 마주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과정에서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밀기지를 포함한 공간이라는 개념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서 공간은 집이라는 개념에 국한되어 있다. 이 또한 정서적 가치로서 주거 공간보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거나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래된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과 기억은 배제된 채 무자비한 현대식 개발이 계속되고, 어느새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되어버린 내 집 마련은 경제논리와 뒤엉켜 목적 없는 욕망이 되어버렸다. 또한 경제적 관점으로 구획되어진 생계 공간의 부족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쪽방촌과 고시촌을 양산했다. 공간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공간을 위해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비밀기지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이 책이 즐겁게 느껴졌던 이유는 현실에서 실현하기 힘든 어릴 적 상상들을 책을 통해 마주할 수 있어서였다.



Monday, August 8, 2016

[책을 읽어보세] 타인의 일상을 여행하다 (그림자 여행_정여울)

<그림자 여행> 정여울


  퇴사 직후 배낭 하나 매고 한 달간 홀로 터키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에서 교훈처럼 말하듯 여행에서 자아 성찰이 모든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허세 섞인 기대와는 달리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주제는 "배가 고프다, 오늘 뭐 먹지"라는 생각 뿐이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자아와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지나가는 강아지가 대신 해줄 법했다. 

  배고픔과 추위 같은 원초적인 욕구가 이따금 지나가고 나면 뜬금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평소 혼자 하는 여행을 즐겼지만 여행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쓸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입에 거미줄을 치다가 식사 주문을 위해 처음 입을 뗀 순간, 마치 태초에 말을 처음 시작한 사람처럼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찌감치 자아 성찰이라는 목표는 던져버리고 숙소를 나와 매일 무작정 걸어 보기로 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다양했다. 자칭 이스탄불의 에미넴이라던 전직 터키 래퍼는 (신빙성은 없다) 갑작스레 아기가 생겨 도심에서 10시간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아이스크림 장사를 시작했다며 해맑게 딸 사진을 보여줬다. 그의 말이 어디부터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거짓이면 또 어떠하리라는 생각으로 아이스크림을 퍼 올리며 뜬금없이 읊조리는 그의 속사포 랩에 한참을 웃어 댔다. 

  어느 날은 터키의 한 시골 옷 가게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파는 70대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의 딸은 이스탄불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고, 딸의 목숨을 앗아간 도시가 싫어 아무 연고가 없는 시골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만약 딸이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또래였다며 갑작스레 눈물이 차오른 얼굴을 떨군 채 괜스레 앞에 있는 재봉틀을 돌렸다. 외로움과 그리움, 삶의 회한이 가득한 눈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맑았지만 슬퍼 보였다. 가게 문을 나설 때 내 손을 잡으며 직접 그린 알록달록한 인어공주 그림 하나를 건넸다. 그 순간 마지막 인사로 그녀를 꼬옥 안으며 나의 체온이라도 당신의 가슴에 위로로 전해지길 바랐다.

  이따금 현지인들의 순수한 호의를 의심부터 하고 보는 모습에, 그간 스스로 깨닫지 못하던 딱딱한 고정관념과 마주하기도 했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한 나를 위해 숙소 주인이 멀리서 샌드위치를 사온 적이 있었는데, 고마움보다는 약을 탄 것이 아닌지 한참을 망설이다 빵을 베어 물었다. (의심이 무색하게 꿀맛이었다) 뒤늦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엇갈려 다시 마주치지 못하고 떠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사람을 피해 혼자 있고 싶어 떠난 타국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사람에게서 다시 따뜻함을 얻고 나 또한 그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길에서 마주한 낯선 사람들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진 만큼, 그저 달아나고만 싶던 한국의 내 일상도 문득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여행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거창한 답은 얻지 못했다.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고민은 제자리였고 해답 역시 없었다. 다만 한 달간 타인의 삶을 여행하며 자아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에 갇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갇혀 있는 나를 낯선 타인에게서 비춰볼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정여울씨는 <그림자 여행>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느낀 감상을 인상적인 영화, 책 내용과 함께 엮어 풀어내고 있다. 사실 저자의 대표작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서 느낀 감동보다 여운은 미미했지만 쉬운 문체로 쓰인 담담한 글은 작가의 일상을 편안히 여행하기에 충분했다. 책장을 덮고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이 책의 제목을 <그림자 여행>이라 지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저자가 생각하는 여행은 어딘가를 떠나야만 하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타인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나의 삶을 반추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에 이러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Monday, July 11, 2016

[책을 읽어보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_프리모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_프리모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 된 자>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다. 작가는 구조된 자의 입장에서 유대인 학살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유대인 내부에서의 균열을 통해 인간이 파괴되고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인에게도 어떠한 이해나 용서, 동정을 배제한 채 라거(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잔혹성을 입증한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후, 자신의 책이 독일인의 손에 번역되는 것을 경계한 작가는 단 한 글자의 왜곡 없이 자신의 글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 수많은 서신을 거쳐 번역을 완성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인간은 결코 타인의 입장이 되지 못한다'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는 후세대로부터 공감이나 동정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언어적 유희 그 이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을 통해 시대의 참극을 최대한 실제적으로 '전달'하고 가해자들에게 그 때의 사건이 시대를 거쳐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그때의 유대인은 짐승 이하의 존재였다. 짐승 취급을 받을 바에 차라리 자살을 택하지 않았냐는 후대의 질문에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고 답한다. 그곳에서의 유대인들은 인간의 행위를 상실한 채 제 목숨조차 선택할 수 없었던 동물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독일은 죄를 분담하고자 학살의 현장에 유대인을 동참 시킨다. 가스실에서 살해된 아이들과 여자들의 뼛가루가 아스팔트 재료로 뿌려지고, 가발 공장에서 희생자들의 머리칼이 잘려나갈 때 모든 것을 직접 수행한 자들은 같은 민족인 유대인이었다. 실제로 해방 직후 유대인 자살률이 나치 수용소에서 자살률 보다 높았던 이유는 인간적 자유를 회복한 상태에서 과거 자신의 행위에 치욕과 죄책감을 느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바로 저자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구조된 자들이 동료의 생존을 빼앗아 살아남은 자들이라 고백한다. 그와 같이 구조된 자들은 더 선한 존재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학살된 자, 곧 가라앉은 자들보다 운이 좋았거나 그들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얄팍한 권력에 잠시라도 기대고 있었던 집단이라고 밝히며 이에 대한 죄책감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가라앉은 자들만이 오로지 독일의 무자비한 폭력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책이 발간된 바로 다음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일은 육체적 노역이나 희생뿐만 아니라 민족을 구성하는 언어를 통해 인간으로서 정체성 상실을 재촉했다. 일상적인 대화조차 모국어로 할 수 없었던 수용자들은 정신적 단절을 경험했고, 감시자들이 내리는 독일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무지한 폭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독일 태생의 유대인 언어학자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수용소의 천박한 독일어와 마주하며, 사랑하는 언어를 잃었다는 좌절감에 수용소에서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

  한 민족의 정체성과 인간성까지 철저하게 파괴한 라거 수용소는 우리의 일제 강점기와 닮아 있다. 가해 국가의 사과 몇 마디, 보상 몇 푼으로 그 시대의 모든 죗값을 받아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는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타인에 의한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역사 교과서 왜곡과 위안부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자세는 무지를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혹한 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더라도 국가의 단순한 사과와 보상으로 역사의 얼룩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우리 세대에서 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절감하며,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고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인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독일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며 유대인 대량학살처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분별한 테러를 통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비극은 그간 있었던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이 아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형식의 무차별한 학살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국가를 잃은 시리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다 바다에 떠밀리고, 몸을 숨겼던 피난민 트럭에서 100여명이 질식해 사망하는 이 현실이 그 당시 학살의 현장과 무엇이 다른가. 심지어 난민을 바라보는 냉혹한 외부자들의 시선은 당시 나치를 옹호한 일반 독일인들의 무관심과 무엇이 다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조된 자와 가라앉은 자들의 경계는 더욱 짙어져만 가고 있다.



Sunday, June 12, 2016

[책을 읽어보세] 비극적인 시대에 망원동 브라더스를 기다리며 (망원동 브라더스_김호연)

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한창 서점가에서 인기몰이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첫 직장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시련도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비록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이지만 나는 청춘이니 당연히 아픈 것이고, 견디다보면 내가 바라던 이상향이 언젠가 실현되리라 위로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몸에 맞지 않은 생활을 견디다보니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어느새 몸과 마음이 실제로 아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1년 만에 회사를 떠나던 날, 책상 한편에 꽂아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회사 서류 더미에 던져둔 채 짐을 챙겼다. 지난날 출판계를 휩쓸던 청춘 소재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어느새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어 조롱 받았고, 동시에 대한민국 20대에게 꿈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갓 20대를 빗겨온 30~40대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더 버텨보느냐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무명 만화가인 주인공 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기러기 아빠 김 부장, 집에서 쫓겨난 반백수 싸부, 공시생 삼척동자가 함께 살면서 생기는 루저들의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이상적인 인생관과 헬조선의 암담한 현실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이지만, 결말에서 모든 등장인물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은 다소 비현실적인 청춘물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영준은 펜대를 놓은 만화가이자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지만, 결말에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웹툰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무능력한 기러기 아빠 김부장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주특기인 해장국으로 사업에 성공해 돌아온 가족과 삶을 꾸린다. 부인과 이혼한 싸부 역시 새로운 가정을 만나 알콩달콩 살고, 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삼척동자는 알고 보니 부잣집 도련님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공무원 준비생이 처지를 비관해 투신자살을 했고 그의 투신에 지나가던 한 공무원 가장이 숨을 거두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김 군의 가방 안에는 작업 공구, 컵라면,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살을 부대끼며 서로의 고충을 나눌만한 ‘망원동 브라더스’도, 핑크빛 해피엔딩도 없었다. 그들의 죽음을 충격적인 에피소드로 보도하는 언론이나 금방 잊힐 사건으로 치부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저자도 한국사회의 이 잔인한 현실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빚어낸 비현실적인 서사를 통해 비극적인 사회에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뻔한 결말이지만 이 소설을 소리 내서 웃으며 읽었던 이유는 위트 있는 문장과 주인공의 시점으로 풀어낸 인생에 대한 메시지 덕분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검붉은 노을로 지지만 다음 날 빠알간 햇살로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다.’ -<망원동 브라더스>中

  지면서 사는 삶 속에서도 결국에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세상에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된다. 대신에 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 비극적인 사회에서 부조리함을 통감하고,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연대의식이 절실하다. 망원동 브라더스처럼 살을 부비는 연대(連帶)는 아니지만 적어도 개개인이 사람답게 살고, 비정상적인 사회의 범주에서 정상의 궤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감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 시대의 태양 같은 사람들이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Sunday, January 10, 2016

근황 혹은 긴 잡담


1. 랩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후로 집에 오면 랩탑을 거의 열어 볼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랩탑 사용이 절실한 순간이 있는데, 몇 달 전부터 인터넷 페이지 하나를 열려면 대략 10분 이상을 기다려야하고 먹통되기를 밥먹듯이하는 상태에 절망.

마침 친구가 LG그램을 사용하길래 빌려서 문서 작업을 하던 중. 이것은 신세계. LG그램을 사겠노라 폭풍 검색을 했으나 각종 사양 별로 가격대가 달라 눈이 핑글핑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 내 PC의 모든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액티브엑스 삭제 및 PC 최적화를 실행하니, 나의 랩탑도 자칫 LG그램으로 갈아탈 주인의 최근 행태에 위협을 느꼈는지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래서 지금 몇 달만에 내 PC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감격적인 순간!) 기계에도 마음이 있나보다. (궤변으로 마무리)

2. 마왕 故신해철-1
- 뮤지션의 죽음이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일듯하다. 지금 30~40대에게는 그의 죽음이 한 천재 뮤지션의 죽음이 아닌, 유년기를 함께한 친한 친구 혹은 형, 선배 그리고 청소년기의 추억의 상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 정신을 대변하는 귀한 사람을 잃었다는데 애석해하는 사람이 많다.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키드였던 나는, 항상 새벽 2시부터 시작하는 그의 방송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잠이 들었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그 때 당시 다소 충격으로 다가오던 Free했던 라디오를 들으며 이불 속에서 큭큭댔던 기억이 난다. 유투브에 그 때 방송을 올려 놓으신 분이 있던데 요즘 잠이 오지 않으면 그 방송을 재생하다가 잠이 스스륵 들곤한다. 마치 내 생체 시계가 그 때를 기억하듯 마왕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제 잘 시간인지 싶어 몸이 반응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시사토론' 동아리를 하면서 100분 토론에 등장하는 마왕의 발언들을 참고하며 부족했던 토론 진행을 급급하게 준비하곤 했었다. 사실 천재 뮤지션으로서 신해철보다 나에겐 토론 패널로서 신해철이 그 땐 더 익숙했다. 간통제 폐지/ 대마초 합법화 등 당시 정치인들조차 피했던 민감한 사회 이슈에 과감한 목소리를 내며 정치인들과의 토론에서 한방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설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다수의 안티를 양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디오 안에서 그는 짝사랑에 가슴 앓는 청취자 뿐만아니라 사업에 실패한 청년에게, 임신한 10대 중학생에게, 우울증을 앓는 고등학생에게 누구보다 진심어린 조언을 했던 친구같은 DJ였다. '좀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라는 코너에서 세상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던 소외된 청년들의 고민을 향해 세상 누구보다 귀를 기울여주고 따뜻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요즘 그 코너를 다시듣기하다보면 그가 해주는 조언들이 요즘 나에게 더 간절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왕의 노래 가사를 곱씹어보며 철학, 인문, 종교 등에 넓고 깊은 지식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던 내던 그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까운 사람이다. 요즈음 대한민국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본다면 신해철씨는 어떤 말을 했을까. 의료사고라는 억울한 죽음으로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마지막 목소리를 내고 간듯하다.

내가 그의 전성기를 함께한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가 살았던 동시대에 내가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블로그에 몇 번이고 그의 이야기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짤막짤막하게 그에 대한 생각을 시간이 날때마다 정리해야겠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모노크롬(신해철)-<일상으로의 초대>
-초등학교 때 친오빠가 들고온 모노크롬 앨범에서 처음 만난 곡.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해철씨의 노래이다. 여러가지 버전 모두 지금 들어도 정말 세련되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최고의 프로포즈 노래이자 사랑 노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사로 프로포즈하는데 응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을까. 신해철씨가 그의 아내에게 쏟은 사랑이 정말 컸음을 알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아무튼 만약 내가 결혼한다면 결혼식 축가는 이 노래로.....

일상으로의 초대  작곡/작사: 신해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지켜보며  알게 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진 않겠지
그렇지만 난 준비가 된 것 같아 너의 대답을 나 기다려도 되겠니
난 내가 말할 때 귀 기울이는 너의 표정이 좋아 
내 말이라면 어떤 거짓 허풍도 믿을것 같은 그런 진지한 얼굴
네가 날 볼때마다 난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네가 날 믿는 동안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야
이런 날 이해하겠니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내게로 와 줘 

I`m spending whole my days for you
Cause I am always thinking about you
I really like to share my life with you
I truely want to be someone for you
So lt is invitation to you
Now I am waiting for the answer from you
I swear I will do anything for you
But sadly I`ve got nothing to give you
All I can do is just say I love you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 날의 일과 주변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간만에 멀쩡한 랩탑으로 쓴 글이라 길어졌다.



Monday, January 4, 2016

새해에는

새해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2016. 그래도 새해에 바람이 있다면,

불필요한 관계에 에너지 소모하지 않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더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기분 좋은 한 해를 보내길.

산술적인 목표를 이루기보다 이런 마음가짐을 지키는게 더 어려운 것임을 매해 느껴가고 있음.
Anyway,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