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_프리모레비 |
<가라앉은 자와 구조 된 자>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다. 작가는 구조된 자의 입장에서 유대인 학살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유대인 내부에서의 균열을 통해 인간이 파괴되고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인에게도 어떠한 이해나 용서, 동정을 배제한 채 라거(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잔혹성을 입증한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후, 자신의 책이 독일인의 손에 번역되는 것을 경계한 작가는 단 한 글자의 왜곡 없이 자신의 글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 수많은 서신을 거쳐 번역을 완성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인간은 결코 타인의 입장이 되지 못한다'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는 후세대로부터 공감이나 동정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언어적 유희 그 이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을 통해 시대의 참극을 최대한 실제적으로 '전달'하고 가해자들에게 그 때의 사건이 시대를 거쳐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그때의 유대인은 짐승 이하의 존재였다. 짐승 취급을 받을 바에 차라리 자살을 택하지 않았냐는 후대의 질문에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고 답한다. 그곳에서의 유대인들은 인간의 행위를 상실한 채 제 목숨조차 선택할 수 없었던 동물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독일은 죄를 분담하고자 학살의 현장에 유대인을 동참 시킨다. 가스실에서 살해된 아이들과 여자들의 뼛가루가 아스팔트 재료로 뿌려지고, 가발 공장에서 희생자들의 머리칼이 잘려나갈 때 모든 것을 직접 수행한 자들은 같은 민족인 유대인이었다. 실제로 해방 직후 유대인 자살률이 나치 수용소에서 자살률 보다 높았던 이유는 인간적 자유를 회복한 상태에서 과거 자신의 행위에 치욕과 죄책감을 느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바로 저자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구조된 자들이 동료의 생존을 빼앗아 살아남은 자들이라 고백한다. 그와 같이 구조된 자들은 더 선한 존재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학살된 자, 곧 가라앉은 자들보다 운이 좋았거나 그들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얄팍한 권력에 잠시라도 기대고 있었던 집단이라고 밝히며 이에 대한 죄책감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가라앉은 자들만이 오로지 독일의 무자비한 폭력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책이 발간된 바로 다음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일은 육체적 노역이나 희생뿐만 아니라 민족을 구성하는 언어를 통해 인간으로서 정체성 상실을 재촉했다. 일상적인 대화조차 모국어로 할 수 없었던 수용자들은 정신적 단절을 경험했고, 감시자들이 내리는 독일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무지한 폭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독일 태생의 유대인 언어학자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 수용소의 천박한 독일어와 마주하며, 사랑하는 언어를 잃었다는 좌절감에 수용소에서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
한 민족의 정체성과 인간성까지 철저하게 파괴한 라거 수용소는 우리의 일제 강점기와 닮아 있다. 가해 국가의 사과 몇 마디, 보상 몇 푼으로 그 시대의 모든 죗값을 받아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는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타인에 의한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역사 교과서 왜곡과 위안부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자세는 무지를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혹한 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더라도 국가의 단순한 사과와 보상으로 역사의 얼룩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우리 세대에서 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절감하며,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고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인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독일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며 유대인 대량학살처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분별한 테러를 통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비극은 그간 있었던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이 아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형식의 무차별한 학살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국가를 잃은 시리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다 바다에 떠밀리고, 몸을 숨겼던 피난민 트럭에서 100여명이 질식해 사망하는 이 현실이 그 당시 학살의 현장과 무엇이 다른가. 심지어 난민을 바라보는 냉혹한 외부자들의 시선은 당시 나치를 옹호한 일반 독일인들의 무관심과 무엇이 다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조된 자와 가라앉은 자들의 경계는 더욱 짙어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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