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때는 나의 위급함을 예견하지 못하고 유유히 우산을 들고 옥스포드를 배회했건만. Oxford,2013 |
한 달간의 여정은 별일 없이 무사히 다녀왔지만, 그 중 가장 그나마 위급했던 순간을 꼽자면 옥스포드에서였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 옥스포드를 유유히 룰루랄라 다녔는데 역시나 길치였던 나는 이정표를 잘 못보고 돌아갈 버스 정류장과 정반대로 걸어나갔다. (여행에서 길을 잃어도 돌고 돌다보면 길은 나오니 걱정말자라는 베짱이 부른 불상사이기도 했다)
버스 출발 시각은 10분이 채 안남았고, 나는 정류장이 가도가도 나오질 않으니 그때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지나가는 좀 친절해보이는 영국아저씨를 붙잡고 정류장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하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정류장까지는 뛰어서라도 족히 10분 이상이 걸릴 거리. 시간 내에 가능할 것 같냐고 묻자 일단 뛰어보자고 우산이고 뭐고 던져버리고 같이 뛰어주셨다. 뛰어가는 길에 뭐 그리 궁금하셨는지 여긴 왜 왔느냐 영국 어디서 머무느냐 한국은 여기보다 춥느냐 등등을 물어 오는 바람에 대답하느라 숨이 넘어갈 뻔했다.
가던 길에 우산까지 내팽겨치시고 버버리코트가 젖은채로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셨는데 버스 출발하기 10초 전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생명의 은인은 바로 당신이에요'라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고 버스가 출발할 것 같아 황급히 버스에 올랐다. 아저씨는 쿨하게 남은 일정 잘 보내라며 손은 흔들며 돌아섰다.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싶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나는 옥스포드에서 발이 묶여야했고 나를 기다리는 버밍엄의 친구를 바람 맞힐 뻔했다.
그 이후 영국 여행 일정 중에 그다지 친절하지 못한 영국 사람들을 골라(?)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여행 동안 옥스포드의 아저씨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