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7, 2010

향기

향기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둔하지는 않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사람에게서 그 사람만의 향기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엄마에게선 엄마 향이 나고 내 친구에게선 내 친구 향이 나고.
고등학교 때 뒤돌아서서 있는데 친구들이 '누구게~'하고 눈가리고 있으면, 대충 누가 장난을 치는지 향기로 감을 잡은 적도 있었다. 가끔 내 향은 뭘까 궁금해서 친구들한테 물어본 적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내 친구들은 "엄마 향기,푸근한 향기" 이런 대답을 듣곤했는데, 그럴때마다 웃어야하는건지 헷갈리곤했다. (10대때 엄마 향기는 조금....좀.... 그렇지 않는가!!!)

최근 故장영희 교수님의 신간을 읽고있는데, 거기서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겨울 날 피자 배달부가 집 문을 열었을 때 집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향기만으로 따뜻한 집이있는가하면 외로움이 풍기는 집이 있다고 말이다. 그 말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향 나쁜 향을 떠나서 감정이 느껴지는 그런 향기 말이다.

아무튼 흔한 향이라도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고약한 향수는 금방 잊혀지고 말지만(사절이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은은하게 풍기는 향은 그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거나 그 사람을 그 향으로 기억하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라도 내 후각이 기억하는 그 향은 그 사람만의 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 헤어진 연인이 자주 쓰던 향수의 냄새를 맡았을 때 문득 그사람인가 뒤돌아 본다고 하지 않는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친근한 사람들의 냄새를 길거리에서 맡을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더 뒤돌아보곤 한다.

향기를 통해 기억되는 사람들과, 향기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 때 그 시간들.
인간의 연상 능력이란.. 깜짝 깜짝 놀랄정도.

그리운 향기들이 많다! 보고싶다 친구들!

Friday, July 16, 2010

할아버지



(동방신기 화면에 왜 루시드폴의 이 노래를 매치시켰는지 궁금하다;;)



저번주 할아버지의 77번째 생신이셨다.
가족들이 모였고, 한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막걸리 몇 잔이 들어가시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는 얘기를 말머리에 붙이셨다. 그러자 작은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는 그런 소리 하지 말으시라며 버럭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요즘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다른 세상으로 가시는 것에 빈자리를 많이 느끼신다고 했다. 몇 달전 할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분을 먼저 보내시고 더욱 허전해하시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우정하는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한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그리고 괴로운 일일까. 또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일일까. 급작스러운 사고도 아닌, '세월'이라는 흐름에 떠맡겨진 인간의 죽음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분 말이다. 아직 할아버지가 느끼시는 상실감을 알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막걸리 몇잔을 걸치시고 나도 빨리 가고 싶다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대강으로나마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새벽에는 세수를 하고 화장실 바닥에 흥건해진 물기를 화장지로 박박 닦고 나왔다. 할아버지께서 혹여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시는데 미끄러지지 않으실까 걱정이 되서였다.

어렸을적부터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엄하시고 완벽하시고 깔끔하시다고 묘사해왔다. 훤칠하신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옷을 멋지게 입을 줄 알는 할아버지. 냉철하기만하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눈물도 많고, 감성적이라는 분이라는 사실을 요즘에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손녀 딸 미국 가는 날 눈물을 훔치셨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놀라기도 놀랐지만 내 마음 속에 있던 할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이 녹아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손녀 딸 싱가포르에서 사는 동안 혹여나 허기지게 먹을까 싶어 큰 돈을 보내시고는 고맙다는 나에게 '잘하고 와라, 할머니 바꿔주마'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전 정기 검진을 다녀온 엄마가 여느때와 같이 할아버지께 다녀왔다고, 별 이상 없다고 전화를 하셨다한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는 "고맙다. 고마워"라고 연거푸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이 많으시다. 눈물도 많으시다. 사랑도 많으시다. 그 세가지를 이제서야 천천히 깨닫고 있다. 그 시대 할아버지처럼 버럭 화 내시고, 엄하시고, 냉철하신건 그저 감정표현에 서툴러서임을 알아가고 있다.


새벽에 화장실 물기를 닦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Tuesday, July 6, 2010

재미




1. 랩탑이 아닌 펜을 잡고 글을 써내려가는데 손이 뻐근했다. 마음도 같이 뻐근했다. 머리도 함께 뻐근해졌다. 오랜만에 글을 써내려가는게, 이런 표현하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좋았다'. 마치 한동안 운동을 쉬다가 다시했을 때 느끼는 그 뻐근함에서 오는 개운함이라고나할까??

1.1. 역시 손으로 글을 쓸때와 랩탑으로 글을 쓸때는 느낌도 다르거니와, 나오는 결과물도 다르다. 손으로 써내려가는게 더 어려운 이유는, 단어를 택하는데 더욱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주욱 써내려가 놓고 한 문장을 써내려 갈때마다 이전 문장들을 다시 읽어가며 누차 확인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걸린다.(한눈에 종이에 쓰여진 필체를 읽기란 의외로 힘들다. 왜냐하면 본인의 글씨체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객관적인 눈이 될 수 없어서, 어떤 것이 비문인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색한 문장이 있으면 커서를 옮겨가서 바로 수정이 가능한 랩탑에서 글짓기는 아무래도 '고민'을 덜하게 되는 것 같다.

1.2. 이제 책을 더 읽어야하고, 글을 많이 써야하고, 생각을 더 해야하고, 관찰해야하고, 더욱 들어야하며, 느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해져야한다!

1.2.1. 요새 해야할 것이 늘어난만큼 하고 싶은것도 늘어나고 있다. 음, 먼저 영화<시>를 보고싶고, 어쿠스틱 기타도 배우고 싶고, 배워서 <오,사랑>을 부르고 싶고, 재즈 피아노도 해보고 싶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안주에 맥주도 먹고 싶고,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하고 싶고,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남산타워 바라보며 책을 들고 나오고 싶고, 교수님도 어서 찾아뵈서 세상얘기하고 싶고, 마음가득 사랑도 하고싶고, 바쁜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 우정하고 싶고, 공연하나 보고싶고, 무한도전 놓친거 한자리에서 치킨 먹으며 보고싶고, 엄마랑 손잡고 미술관도 가고싶고, 돌아오는 길에는 인사동 가서 좋아하는 파스타 먹고싶고, 시집도 읽고 싶고, 수영장에서 배영도 하고싶고, 예쁜 원피스 하나 사고싶고, 그냥 덕수궁 걸으면서 아무생각도 없고싶고, 그러다 고민도하고 싶고, 영어 공부하고 싶고, 일본어 중국어도 배우고싶고, 모르는 음악을 찾아듣고 싶고, 그리워하는 이들을 보고싶다....

1.2.2. 음, 노는게 너무 많나? 그래도 가장하고 싶은건 어서 내가 꿈꾸는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다. 그러니까 당장 하고 싶은건 감내해야할 이유가 충분한거지?


2. 위의 음악 <오,사랑>은 루시드폴의 원곡이다. 물론 루시드폴의 음성도 두말할 것 없이 좋지만 이 곡은 유난히 이하나의 목소리로 듣는게 좋다. 그래서 무한 반복한다. 노래방 싫어하는 나지만, 이 노래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흥얼흥얼. 시보다 더 시적인 가사. 어쩜 이런 가사가?? 그리고 이하나 목소리가 어쩜 이렇게 좋은지.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기타와 함께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물론 그 반대가 되어 듣고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