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4, 2014

속절없이 당하는군


-페이스북에 도대체 자신의 다이어트 일기는 왜 쓰는 것이며,(나는 당신이 일주일에 몇 kg을 뺐는지 궁금하지 않다) 감성에 젖은 일기는 왜 장문으로 올리는지(나는 당신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고 싶지 않다) 수많은 아기 사진은 그렇다쳐도 왜 자신의 치아 X-레이 사진까지 올리는건지.(나는 당신의 건강 상태를 알고 싶지 않다) 

-페이스북 소음과 공해가 심해졌다. 다들 외로운건 알지만, 보기 싫은 소음같은 사진과 글은 현대인의 외로움이 가져온 새로운 '외부불경제' 같기도 하다.

-트위터를하거나 블로그질을 하는게 역시 좋다. 예전에는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곤 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일기도 쓰지 않고 하루를 그냥 흘러보내고 있다. 블로그에 짧게나마 생각이나 사진을 남기고 기록하는게 시간이 지났을 때 아쉽지 않을 것 같다. 
(과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며 살았나 궁금하니까)

-내 블로그는 거의 개인 기록용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사실 블로그는 마음 잡고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자주 들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가끔 트위터에 몇 마디 기록하긴 하지만 블로그보다 하겠는가)

-문득 기록하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는 기억이 아쉽다.

-영원할 것처럼 기억할 것 같던 순간과 사람, 사소한 것들이 문득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잊혀져 간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집착했던 것들에 초연졌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그것들에 대한 기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서 삭제된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그 때야 말로 비로소 '나는 그, 그것에 더이상 마음을 쓰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로 머리에 기록해 놓은 '마음'들은, 사람보다 더 큰 범주인 시간이라는 것에 속절없이 당하곤 한다.

-잡담은 그만하고 시간에 속절없이 당하기 전에 오늘의 사진을 몇 개 올려보자. (뒤죽박죽)


날도 선선하니 서울 시내에서 페스티발을 열고 있다



맥주로 유럽여행하기





Sunday, July 27, 2014

몇가지 생각


1. 버려둔 블로그에 슬금슬금 찾아왔다. 역시나 네이버 블로그보다 시끌벅적하지 않아 좋은 일기장 나의 블로그스팟이여.

2. 추억에 대한 예의
-한 달 사이에 새로운 상점이 생기고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나가는 모습을 자주본다. 얼마 전까지 익숙했던 공간인데 바뀐 낯선 모습에 적응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서울은 추억에 대한 예의를 잊은지 오래다. 

누군가에게 첫 사랑의 고백이 서린 돌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별이 담긴 공중전화 박스일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추억이 담긴 장소가 점점 없어져 간다. 새로운 것, 깨끗한 것, 보기 좋은 것이 말 그대로 '더 좋은'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들 개개인이 품고 있는 추억이 담긴 곳들은 요즘 식의 편리한 장소로 간단히 무시되어 가는게 안타깝다. 서울엔 무언가 오래도록 지키고자하는 추억에 대한 예의라곤 찾을 수가 없다. 

건축가 故정기용 선생의 말처럼 도시는 시간이 달아나 버린지 오래다. 한옥마을 같은 전통적인 장소에 발걸음이 늘어나는 이유는, 마지막으로 시간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으려는 현대인의 무의식적인 갈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 어른이 된다는 것
-늘 어른이 되는 순간인지 언제인지 궁금했다. 요즘들어 슬픈지 기쁜지 모르는 애매한 순간이 찾아 올때마다 이런 기분이 어른이 되어가는 징조인가 싶다. 특히 열정적이었던 무언가에 '무뎌진다' or '잊혀져 간다'는 느낌이 들때 그런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관심사들을 요즘 막상 떠올리려고하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가 그렇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내 주변 사람들이 알겠지만 난 10대 초반부터 모 가수를 '정말' 좋아해서 매번 콘서트가 열리면 혼자서라도 꼬박꼬박 가서 가슴 설레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가수의 콘서트에서 나도 모르게 음악에 집중하기 보다 내일 할 일을 떠올린다던가 딴 생각에 빠져 있었다. 10대와 20대 초반에 돈을 모아 간 그 때보다 지금은 콘서트 표나 음반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살 수 있었는데도 마음은 그때와 같지 않았다. 우연히 청소하다 발견한 일기를 보거나 모아둔 음악 파일을 정리하고 있으면, 이런 것도 내가 좋아했나 싶기도하고 뭐 그렇다. 

-사람에게 쏟았던 애정이나 관심도 점점 무뎌져 간다.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보듯 나는 천성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믿음이 깊다. 하지만 요즘 가장 무뎌진게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다. 

몇 년사이 알게 모르게 마음이 다치기도 했고, 인간 관계에서 믿음을 주지도 갖지도 않는게 좋은 사이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예전엔 나와 맞지 않더라도 상대에게 맞추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피곤함에서 멀어지게 되어 더 좋다.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구지 다시 만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만남에 나가 분위기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 편할 때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보다 지금 내 곁에 믿을만한 친구들에게 마음을 터 놓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슬픈게, 타인과의 만남에서 무거운 얘기는 가급적이면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적어도 만나고나서 기분이 다운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친한 친구와의 만남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만남에서는 괜찮지 않은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좋은 기분을 내비쳐야 한다는데 힘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드라마 속의 말이 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어찌보면 하나하나 울고 웃던 시절이 심적으로는 더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무뎌져가는 지금이 더 좋은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하면 무엇을 택할지도 잘 모르겠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과정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에, 외로움과 더불어 '무뎌짐' 견디는 과정이라 덧붙이고 싶다. 




Sunday, February 2, 2014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


-친구따라 재미삼아 본 사주에서는 늘 그렇게 말했다. '8'이 붙은 나이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신반의로 "로또라도 되려나?", "인생을 바꿀 직업을 만날까?" "결혼하는 건가?" 등등 큰 이벤트가 오리라 기대했다.



2013년 28살 (한국식 나이), 신기하게도 전환기를 맞이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일차원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다른 의미의 전환이었다.



작년을 떠올리자면 나는 중고 신입의 상태로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고민하는 과정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지속될 수 없는 고민이다. '직업'을 고민하다보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내면/외면적 압박으로 무작정 수십개의 직장에 원서를 넣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다시 '이래도 되는 것인가? 또 다니다가 후회하면 어쩌지?', '원하는 걸 찾을 때가지 여유를 가져볼까?'라는 고민에 휩싸여 한동안 원서 쓰기를 멈춘다.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는 명확히 지조를 부릴만한 業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이 몇 달, 몇 주, 몇 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일이 다반사. 차라리 대학을 갓 졸업한 꿈에 부푼 상태였다면 고민은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해본 중고 신입은 사회에 대한 환상은 덜한 상태, 과거 내가 했던 잘못된 선택은 더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은 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하나? 조금이라도 재밌었던 사건을 몇 개를 꼽아보자, 없으면 말고. 그랬더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몰입했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일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공통점이 단 한가지가 아니라 세 네가지 였는데, 성격이 비슷하긴 했지만 일과 연관짓자면 전혀 다른 분야에 배치되는 것도 있었다. 내 성향에 맞는 다섯손가락에 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지라는 생각으로 집중 공략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집중 공략을 했지만, 또 생각만큼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디 사람 인생이 혼자 꾀 부린다고 되는 일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꾀 부리지 않아도 될 일은 되는 경우도 있었다. 12월의 마지막에 정말 가고싶은 회사는 떨어지더라라는 나름의 징크스를 깨고, 오래도록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보다 그 다음이나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業으로 삼고 싶은 바람도 이뤄졌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은 미래에 대한 환상과 꿈이 주책없이 그려지던 즐거운 날이었다.

(돌아보니 사실 '정말 가고 싶던 회사는 떨어지더라'라는 징크스는 이유가 있던 징크스였다. 떨어졌던 회사는 모두 그 '회사'에 가고 싶은 것이었지, 거기서 하는 '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작년 일들을 글로 옮기기엔 일단 귀찮다. 쓰고나니 무슨 대단한 합격 수기처럼 보이는 것도 민망하다. 그저 2013년은 나에게 짧지만 긴 한해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서 말한 28세에 맞이한 전환기는 깜짝 놀랄 이벤트가 아니라, 몇 가지 '생각의 전환'이었다.



하나는, 어떤 선택이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사실 나는 대학 졸업 후 몇 가지 방황을 통해 '선택'에 대한 후회를 지겨울 정도로 길고 오래 해왔다. 자연스럽게 그런 후회는 당시 그러한 선택을 했던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쉽사리 용서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털어버리기엔 상처가 컸고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내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기만 하던 선택들은 돌아보니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밉기만 하던 그 시간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더 놀라운 것은 생각지도 못한 선택과 인연이 결국 시간을 건너 지금 내 선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밉기만 하던 과거의 나와 나의 선택들에게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던질 수 있었다.
엄마는 그동안 괴로워하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신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뜻을 이뤄주신다고. 왜 소원을 들어주지 않냐고 투덜대던 날라리 천주교 신자는 이제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고 감히 말해본다.


두 번째는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

어떻게 보면 무력한 말로 보이겠지만 정말 그렇다. "안되면 말고" 이런 식의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사실 나는 졸업 후부터 첫 직장까지 한 번, 그리고 이번 중고 신입까지 총 두 번의 백수 기간을 거쳤다. 첫 백수 시절은 정말 초조했다. 내 뜻으로 되는게 없으니 속이 탔다. 두 번째 작년 백수 기간은 사실 초조하긴 했다. 하지만 첫 번째보단 아니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취직을 빨리해야지 보다는 '기왕 놀거 더 재밌게 놀아야 되는데" 라는 초조함이 더 컸다. 그런 생각의 차이는 직장 경험의 유무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라는 그 사이 생긴 생각 때문이었다. 
발버둥 친다고해서 될 일이었으면 세상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겠지 싶었다. 대신 내 것이면 온다는 생각은 마음을 비울 때 좋았다. 사람이건 어떠한 일이건 인연이면 언젠가 다가온다. 그 시간이 스스로 가늠한 생각과 달라서 그렇지 어떤 걸림돌이 있건 방해물이 있건 될 일은 되고 만날 인연은 만난다. (다른 말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바람이나 인연에 대해 구태여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반복되는 일상도 소중하다.

작년 봄,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간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 때는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 지겹고 재미없어서 무작정 빨리 떠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좋은 사람과 기억을 많이 만들어 오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예상은 역시나 적중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순간도 있었다. 한 달간 타지에서 혼자 여행하면서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생활하기는 가끔 너무나 외로웠다.
스스로 여행에선 누구보다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있었던 여행이었지만, 가끔은 우울을 바닥치는 날도 있었고 멋진 광경 앞에서 집이 더 그립기도 했다. 어느 날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녘 숙소를 나오면서 출근하는 회사원들을 바라봤다. 분주하고 바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빵집에서 빵을 사고, 자신의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자신의 직장과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그들이 어느 순간 부러웠다. 한국에선 그렇게 피하고 싶던 '익숙하고 일상적인' 그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그리운 순간이었다. 작년 여행을 통해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 월요병이 무섭고 쉬는 날이 더 좋은 회사원이라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잊기도 한다. 그래도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2013년에 깨닫고, 이따금 일상이 지겨울 때면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을 가졌기에 나름 생각의 전환이라 말하고 싶다.


작년 12월 마지막 주 미사에서 신부님은 루소의 에밀에 나온 한 구절을 소개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느끼는 것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선 선택이 모여 나를 만들고 모든 선택에는 나의 성향과 생각이 담겨있다고 말씀하셨다. (타이밍도 기막힌!) 느끼는대로 성장한 나의 2013년에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만 28세인 올 한해 또 어떤 전환기가 다가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