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22, 2013

할아버지2

할아버지 댁 우편함


1년이 조금 넘었다.
작년 이 맘때즈음, 사회학 교수님이 초청해주신 포럼에 갔었다. 포럼이 끝나고 저자와 제자들 등의 뒷풀이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불어온 세상의 이야기에 설레며 집으로 귀가했고, 다음날 이전보다 나은 기분으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던 중에 오빠의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건강하시고 정정하셨던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오빠의 말을 재차 묻고 물었고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무실을 뛰쳐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어제 포럼에 가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안부전화 하나 했더라면, 어제 그리 설레했던 모든 순간이 죄책감처럼 다가왔다.

병원에 도착해 작은 엄마는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건넸고, 나는 할아버지 그대가 떠나기 전에 준비하신 그 영정 사진의 뽀얀 먼지를 닦았다. 장례를 치르고 문상객들을 맞이하면서 할아버지 친구 분들을 보게 되었다. 당신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떠나는 그 사실이 참 쓸쓸하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엊그제 만났던 친구도 몇일이 지나 영정사진으로 보게 된다던 말씀이었다.

문상객 중에 할아버지 친구 분이 다리를 절며 오셨다. 지팡이를 짚은 한손과 모자를 내려 놓으며 그대의 친구 사진에서 고개 숙이고 식사도 안하고 돌아서셨다. '이 친구 지금 가는가.' 한마디 하시고 떠나시는  뒷모습을 봤다. 짧은 한 마디었지만 그 속에는 '언제고 당신을 따라가니 그 세월 동안 외롭지 말라. 나도 곧 자네를 따라 가니 그리 슬프지 않으니. 그대 편히 가게.' 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애써 구겨 신고 온 검은 구두를 우겨 넣으며 지팡이를 짚고 돌아서는 그분의 절룩임을 보면서 장례 치르던 내내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왜 그 모습에서 눈물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경계는 참으로 미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경계 또한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운명에 맡길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감싸 안고 그 무뚝뚝하던 장손은 할아버지 얼굴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 서럽게 우는 오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빠 역시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꺼이꺼이 눈물을 삼키셨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국립 묘지에서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신부님이 오시고, 가족들은 성가를 불렀다. 우비를 쓰고 검은 상복을 입고 나는 흙을 한줌 펐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가족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난 할아버지한테 미안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 그렇게 사근사근한 손녀도 아니었고, 그렇게 연락을 자주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나 아팠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엄해서 미워했던 그 사소한 감정도 죄책감의 일부였다. 할아버지는 전화하실 적에, "할아버지!"라고 반갑게 대답하던 내 목소리를 참 좋아하셨단다. 참 착하다고, 마음이 깨끗하다고. 그것도 돌아가신 이후에나 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할아버지에게서 온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았던 그 모든게 가장 큰 죄책감이었다.

장례가 있은 후, 친구는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줬다. 그리고는 언젠가 연락이 와서 기도 중에 불쑥 "괜찮아"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전해줬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내 친구에게 전한 말인지, 아니면 친구가 나에게 전한 말인지 무엇인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이 참 감사했다. 그 한마디에 난 몇달이고 이따금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미사에서 하늘에서 좋은 분들과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가끔 어머니 꿈에서 그렇게 편한 모습으로 웃고 계신단다.

작년에 차마 풀어 놓지 못한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게 괜찮아진 지금이 참 편안하기 때문이다. 불편했던 지난해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욱 아프게했다. '안'괜찮은 그 때의 마음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참으로 괜찮다.

누군가 나에게 삶의 슬픔이나 아픔을 토로 할때 어떠한 말로도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서툰 위로는 그 슬픔이나 아픔이 자칫 가벼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나는 위로에 서툴다. 사실 어떤 말로도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내 앞에서 넘어졌을 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그렇게 위로 받았고 위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작년에 만난 사회학 교수님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 1년 남짓 된 이야기를 교수님께 말하려고 한다. 교수님은 말하실 것 같다. 괜찮다고.



2 comments:

  1. 이제 그런 아픔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실 수 있겠네요.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다 가벼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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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금 아주조금 이해가 될것같아요ㅋ.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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