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한창 서점가에서 인기몰이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첫 직장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시련도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비록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이지만 나는 청춘이니 당연히 아픈 것이고, 견디다보면 내가 바라던 이상향이 언젠가 실현되리라 위로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몸에 맞지 않은 생활을 견디다보니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어느새 몸과 마음이 실제로 아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1년 만에 회사를 떠나던 날, 책상 한편에 꽂아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회사 서류 더미에 던져둔 채 짐을 챙겼다. 지난날 출판계를 휩쓸던 청춘 소재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어느새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어 조롱 받았고, 동시에 대한민국 20대에게 꿈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갓 20대를 빗겨온 30~40대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더 버텨보느냐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무명 만화가인 주인공 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기러기 아빠 김 부장, 집에서 쫓겨난 반백수 싸부, 공시생 삼척동자가 함께 살면서 생기는 루저들의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이상적인 인생관과 헬조선의 암담한 현실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이지만, 결말에서 모든 등장인물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은 다소 비현실적인 청춘물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영준은 펜대를 놓은 만화가이자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지만, 결말에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웹툰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무능력한 기러기 아빠 김부장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주특기인 해장국으로 사업에 성공해 돌아온 가족과 삶을 꾸린다. 부인과 이혼한 싸부 역시 새로운 가정을 만나 알콩달콩 살고, 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삼척동자는 알고 보니 부잣집 도련님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공무원 준비생이 처지를 비관해 투신자살을 했고 그의 투신에 지나가던 한 공무원 가장이 숨을 거두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김 군의 가방 안에는 작업 공구, 컵라면,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살을 부대끼며 서로의 고충을 나눌만한 ‘망원동 브라더스’도, 핑크빛 해피엔딩도 없었다. 그들의 죽음을 충격적인 에피소드로 보도하는 언론이나 금방 잊힐 사건으로 치부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저자도 한국사회의 이 잔인한 현실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빚어낸 비현실적인 서사를 통해 비극적인 사회에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뻔한 결말이지만 이 소설을 소리 내서 웃으며 읽었던 이유는 위트 있는 문장과 주인공의 시점으로 풀어낸 인생에 대한 메시지 덕분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검붉은 노을로 지지만 다음 날 빠알간 햇살로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다.’ -<망원동 브라더스>中
지면서 사는 삶 속에서도 결국에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세상에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된다. 대신에 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 비극적인 사회에서 부조리함을 통감하고,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연대의식이 절실하다. 망원동 브라더스처럼 살을 부비는 연대(連帶)는 아니지만 적어도 개개인이 사람답게 살고, 비정상적인 사회의 범주에서 정상의 궤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감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 시대의 태양 같은 사람들이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