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재미삼아 본 사주에서는 늘 그렇게 말했다. '8'이 붙은 나이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신반의로 "로또라도 되려나?", "인생을 바꿀 직업을 만날까?" "결혼하는 건가?" 등등 큰 이벤트가 오리라 기대했다.
2013년 28살 (한국식 나이), 신기하게도 전환기를 맞이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일차원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다른 의미의 전환이었다.
작년을 떠올리자면 나는 중고 신입의 상태로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고민하는 과정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지속될 수 없는 고민이다. '직업'을 고민하다보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내면/외면적 압박으로 무작정 수십개의 직장에 원서를 넣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다시 '이래도 되는 것인가? 또 다니다가 후회하면 어쩌지?', '원하는 걸 찾을 때가지 여유를 가져볼까?'라는 고민에 휩싸여 한동안 원서 쓰기를 멈춘다.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는 명확히 지조를 부릴만한 業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이 몇 달, 몇 주, 몇 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일이 다반사. 차라리 대학을 갓 졸업한 꿈에 부푼 상태였다면 고민은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해본 중고 신입은 사회에 대한 환상은 덜한 상태, 과거 내가 했던 잘못된 선택은 더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은 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하나? 조금이라도 재밌었던 사건을 몇 개를 꼽아보자, 없으면 말고. 그랬더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몰입했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일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공통점이 단 한가지가 아니라 세 네가지 였는데, 성격이 비슷하긴 했지만 일과 연관짓자면 전혀 다른 분야에 배치되는 것도 있었다. 내 성향에 맞는 다섯손가락에 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지라는 생각으로 집중 공략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집중 공략을 했지만, 또 생각만큼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디 사람 인생이 혼자 꾀 부린다고 되는 일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꾀 부리지 않아도 될 일은 되는 경우도 있었다. 12월의 마지막에 정말 가고싶은 회사는 떨어지더라라는 나름의 징크스를 깨고, 오래도록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보다 그 다음이나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業으로 삼고 싶은 바람도 이뤄졌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은 미래에 대한 환상과 꿈이 주책없이 그려지던 즐거운 날이었다.
(돌아보니 사실 '정말 가고 싶던 회사는 떨어지더라'라는 징크스는 이유가 있던 징크스였다. 떨어졌던 회사는 모두 그 '회사'에 가고 싶은 것이었지, 거기서 하는 '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작년 일들을 글로 옮기기엔 일단 귀찮다. 쓰고나니 무슨 대단한 합격 수기처럼 보이는 것도 민망하다. 그저 2013년은 나에게 짧지만 긴 한해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서 말한 28세에 맞이한 전환기는 깜짝 놀랄 이벤트가 아니라, 몇 가지 '생각의 전환'이었다.
하나는, 어떤 선택이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사실 나는 대학 졸업 후 몇 가지 방황을 통해 '선택'에 대한 후회를 지겨울 정도로 길고 오래 해왔다. 자연스럽게 그런 후회는 당시 그러한 선택을 했던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쉽사리 용서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털어버리기엔 상처가 컸고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내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기만 하던 선택들은 돌아보니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밉기만 하던 그 시간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더 놀라운 것은 생각지도 못한 선택과 인연이 결국 시간을 건너 지금 내 선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밉기만 하던 과거의 나와 나의 선택들에게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던질 수 있었다.
엄마는 그동안 괴로워하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신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뜻을 이뤄주신다고. 왜 소원을 들어주지 않냐고 투덜대던 날라리 천주교 신자는 이제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고 감히 말해본다.
두 번째는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
어떻게 보면 무력한 말로 보이겠지만 정말 그렇다. "안되면 말고" 이런 식의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사실 나는 졸업 후부터 첫 직장까지 한 번, 그리고 이번 중고 신입까지 총 두 번의 백수 기간을 거쳤다. 첫 백수 시절은 정말 초조했다. 내 뜻으로 되는게 없으니 속이 탔다. 두 번째 작년 백수 기간은 사실 초조하긴 했다. 하지만 첫 번째보단 아니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취직을 빨리해야지 보다는 '기왕 놀거 더 재밌게 놀아야 되는데" 라는 초조함이 더 컸다. 그런 생각의 차이는 직장 경험의 유무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라는 그 사이 생긴 생각 때문이었다.
발버둥 친다고해서 될 일이었으면 세상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겠지 싶었다. 대신 내 것이면 온다는 생각은 마음을 비울 때 좋았다. 사람이건 어떠한 일이건 인연이면 언젠가 다가온다. 그 시간이 스스로 가늠한 생각과 달라서 그렇지 어떤 걸림돌이 있건 방해물이 있건 될 일은 되고 만날 인연은 만난다. (다른 말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바람이나 인연에 대해 구태여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반복되는 일상도 소중하다.
작년 봄,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간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 때는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 지겹고 재미없어서 무작정 빨리 떠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좋은 사람과 기억을 많이 만들어 오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예상은 역시나 적중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순간도 있었다. 한 달간 타지에서 혼자 여행하면서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생활하기는 가끔 너무나 외로웠다.
스스로 여행에선 누구보다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있었던 여행이었지만, 가끔은 우울을 바닥치는 날도 있었고 멋진 광경 앞에서 집이 더 그립기도 했다. 어느 날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녘 숙소를 나오면서 출근하는 회사원들을 바라봤다. 분주하고 바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빵집에서 빵을 사고, 자신의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자신의 직장과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그들이 어느 순간 부러웠다. 한국에선 그렇게 피하고 싶던 '익숙하고 일상적인' 그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그리운 순간이었다. 작년 여행을 통해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 월요병이 무섭고 쉬는 날이 더 좋은 회사원이라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잊기도 한다. 그래도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2013년에 깨닫고, 이따금 일상이 지겨울 때면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을 가졌기에 나름 생각의 전환이라 말하고 싶다.
작년 12월 마지막 주 미사에서 신부님은 루소의 에밀에 나온 한 구절을 소개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느끼는 것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선 선택이 모여 나를 만들고 모든 선택에는 나의 성향과 생각이 담겨있다고 말씀하셨다. (타이밍도 기막힌!) 느끼는대로 성장한 나의 2013년에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만 28세인 올 한해 또 어떤 전환기가 다가올지 궁금하다.